‘물류대란’ 산업계 아우성에… 협상하러 온 한진은 ‘빈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6일 03시 00분


[한진해운 후폭풍]채권단과 마주 앉았지만…

한진그룹과 채권단이 다시 만난 것은 물류대란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제대로 된 ‘위기대응 시나리오’도 없이 국내 1위 해운사를 덜컥 법정관리행으로 보내면서 비난의 화살이 정부뿐만 아니라 한진그룹과 채권단 모두를 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한진그룹은 물류대란 최소화를 위한 추가 자금 투입에 여전히 부정적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한진그룹의 이번 재협상 시도를 놓고 책임 회피를 위한 ‘제스처’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양측의 줄다리기가 길어질수록 물류대란으로 인한 수출 피해는 눈 덩이처럼 불어날 것이기 때문에, 정부 채권단 한진그룹 3자가 각자 한 발짝씩 양보해 빠른 결정이 나올 수 있기를 수출업계는 주문하고 있다.
○ 한진그룹 추가 압박한 금융당국

5일 정부 합동대책 태스크포스(TF)에 따르면 한진해운의 운항 선박 128척 중 79척(컨테이너선 61척, 벌크선 18척)이 운항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날 집계한 비정상 운항 선박 수는 전날 집계한 68척보다 11척 늘어났다. 미국 중국 일본 등에서 항만 당국이 입·출항을 금지하거나 하역 관련 업체들이 밀린 대금을 지급하라는 등의 이유로 작업을 거부해서다.

수출입 루트의 한 축이 무너진 후폭풍은 예상보다 컸다. 선박 79척에 실린 컨테이너 30만 개 중 11% 정도가 국내 화주들의 화물로 파악된다. 물류대란을 가늠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한진그룹 ‘책임론’을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오전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한진그룹과 대주주(조양호 회장)가 사회적 책임을 지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도 “한진해운의 우량 자산을 담보로 하는 것 등 대주주와 회사가 책임진다는 원칙하에서 (정부가)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 빈손으로 산은 찾아간 한진그룹

금융당국과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이날 오후 이상균 대한항공 대표이사(부사장)가 KDB산업은행을 찾아갔다. 금융업계와 해운업계에서는 한진해운이 추가 자구안을 마련해 채권단과의 마지막 협상을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우리도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법정관리 신청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한진에서는 더 이상 낼 돈이 없으니 채권단이 조금 더 부담해 달라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전했다.

현재 한진해운 선박 운항 차질의 원인이 되는 하역비, 운반비, 용선료 등을 채권단이 우선 해결해 달라는 요구라는 것이다. 한진해운이 해외 항만, 하역업체, 선주 등에 지불해야 할 대금은 약 6500억 원에 이르며,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당장 필요한 자금만도 2000억 원가량인 것으로 추산된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한진해운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오지 않으면 법정관리로 가는 것은 원칙적인 수순이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진해운이 직전까지 화주들의 제품을 실어 보내고 ‘대마불사’론을 고집한 것은 도덕적 해이”라고 지적했다.
○ 한진해운 앞에 놓인 운명은…

이 대표이사는 이날 “법원에서 한진해운의 회생을 결정한다면 자구안에서 제시한 5000억 원(대한항공 유상증자 4000억 원+조양호 회장 및 계열사 지원 1000억 원)을 댈 테니 채권단도 신규자금 5000억 원을 지원해 달라”고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융당국 및 채권단은 이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분위기다. 채권단이 최종 거부했던 자구안을 다시 수용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게다가 한진해운은 이미 국제 해운동맹에서도 퇴출돼 회생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한진그룹은 “6일 다시 산은과 얘기할 것”이라며 재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해외에서는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를 관할하는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일본 도쿄지방재판소가 한진해운 회생절차 승인 결정과 함께 ‘스테이오더(Stay Order·압류금지명령)’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한진해운은 이로써 강제집행의 위험 없이 일본 운항이 가능해졌다.

한진해운은 2일(현지 시간) 미국 뉴저지 뉴어크 파산법원에도 파산보호 신청을 냈다. 이 법원이 6일 심리를 열어 파산보호를 받아들이면 북미 항로가 주력인 한진해운으로서는 바다에 떠 있는 선박 상당수가 압류 위험을 벗어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진해운은 이번 주 내로 캐나다, 독일, 영국 등 10여 개국 법원에 추가로 파산보호를 신청할 방침이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강유현·박창규 기자
#한진해운#물류대란#산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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