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쌀 덜 먹으니… 육류는 웃고 나물은 통곡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2일 03시 00분


‘쌀 소비 감소’의 경제학

추석을 앞두고 쌀 풍년에 대한 기대감보다 쌀 값 하락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풍년의 역설’이다.

쌀이 남아도는 가장 큰 원인은 소비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는 1970년 136.4kg에 육박하던 것이 2005년 80kg 아래로 내려왔고 지난해에는 62.9kg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쌀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은 또 다른 비즈니스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8호에 실린 쌀 소비 추세 분석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원인으로 빵 소비의 증가를 드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농촌진흥청이 수집한 수도권 1000여 가구의 5년간 식품 구매 영수증 자료 분석에 따르면 빵이 밥을 대체하고 있지는 않다. 한국인은 여전히 ‘밥심’을 중시하기 때문에 빵은 주로 간식으로 먹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쌀의 대체품은 무엇일까. 최근 5년간 수도권 주부들의 구매 패턴을 보면 단일 제품군 가운데 구매액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육류다. 신선육 구매를 보면 조사 대상인 수도권 가구의 경우 2012년에 연평균 58만 원을 지출했는데 2015년엔 무려 74만 원을 썼다. 가공육까지 포함하면 2012년엔 75만 원, 2015년에는 94만 원에 달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채소 소비량은 쌀보다도 더 급격히 줄고 있다. 한국인의 1인당 채소 소비량이 놀라울 정도로 높았던 가장 큰 이유는 채소를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는 습관 때문이다. 그러나 외식이 증가하고 한 그릇 음식 중심의 음식 문화가 확산되면서 나물의 섭취가 줄고 있다. 밥을 적게 먹으면 나물의 섭취도 줄어든다. 채소류는 쌀과 보완재인 데 반해 육류는 쌀의 대체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쌀 소비의 감소는 반찬 소비의 감소를 의미한다. 이 때문에 미나리, 시금치, 고사리, 가지, 콩나물 등 나물류의 소비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반면에 고기의 소비가 늘면 불에 고기를 구워 쌈과 함께 먹는 우리의 음식 문화 특성상 상추를 비롯한 쌈 채소류의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청겨자, 치커리, 쌈채, 청경채, 코스타마리 등의 비교적 생소한 이름의 쌈 채소들이 요즘 우리의 식탁과 외식 업체의 식탁에 신선하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쌀 가공 시장 역시 성장이 기대된다. 밀이 쌀을 제치고 전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가공기술에 있다. 밀로는 빵, 파스타, 과자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반면에 쌀은 쌀 원물의 형태로 소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밀 가공기술의 역사는 수천 년이지만 쌀 가공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50년 정도에 불과하다.

새로운 쌀 품종의 출현도 필요하다. 이 분야에서는 일본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고, 우리도 그 뒤를 따라가고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맛과 식감의 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슈퍼 곡물’이다. 슈퍼 곡물은 학문적으로도 아무런 근거가 없는 세일즈 용어이며 그 정의가 모호하다. ‘타임스’가 10대 슈퍼 푸드, 6대 슈퍼 곡물을 선정했다고들 하지만 역시 근거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슈퍼 곡물의 인기는 놀랍다. 슈퍼 곡물로 꼽히는 귀리, 치아씨, 퀴노아, 병아리콩, 렌틸콩 등이 다이어트 용도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 슈퍼 곡물이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는지는 의학적으로 전혀 검증돼 있지 않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슈퍼 곡물이 쌀을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감소하고 있는 쌀 소비를 반등시키기 위한 핵심은 역시 편리하면서 좋은 제품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적절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쌀 제품은 분명히 소비자들에게 어필한다. 우리가 쌀을 덜 먹는 것은 쌀이 싫어서가 아니라 쌀을 조리해서 밥과 반찬을 해먹는 과정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35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이 최근 1년간 무려 200% 이상의 매출 신장을 달성했다. 밥이 싫어서 먹지 않는 사람은 없다. 좋은 제품이 나오면 소비자는 기꺼이 밥에 지갑을 연다. 밥에도 혁신이 필요하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부교수·Food Biz Lab 연구소장 moonj@snu.ac.kr
#쌀#육류#나물#경제학#쌀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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