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점을 둘러보다 ‘미들맨(middleman)의 시대’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무엇을 연결하고 어떻게 시장을 장악할 것인가’라는 책의 카피에 끌렸다. ‘미들맨’이란 보험설계사, 부동산중개인, 중고차 딜러 등 구매자와 판매자를 이어주는 중개인을 뜻한다. 인터넷이 확산되던 초기엔 전자상거래가 발전할수록 물건 구매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감소해 결국 거래에 참여하는 구매자와 판매자만 남게 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관측은 빗나갔다. 비대면 거래에서 신뢰가 중요해지면서 미들맨의 역할이 더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회사인 이베이에선 구매자와 판매자가 직접 거래를 할 수는 있지만 중간 판매자인 미들맨을 통해 이뤄지는 거래가 대부분이다. ‘공유경제’는 구매자와 판매자만 있어서는 존재할 수 없다. 숙박 공유사이트 에어비엔비부터 우버택시까지 그 중심에는 미들맨이 있다. 인터넷 등 과학기술의 발달이 일자리를 감소시키고 실업자를 증가시킬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새로운 미들맨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정부가 온라인을 통한 중고차 관련 서비스 활성화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미들맨의 역할에 주목한 결과다. 중고차 시장은 소비자와 중고차 매매업자 모두 완전한 정보를 갖지 못하는 불완전 경쟁시장이다. 온라인 자동차매매정보제공업이 입법화되면 중고차 시장에서 미들맨들이 소비자와 매매업자에게 거래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보험개발원도 ‘카히스토리’ 시스템을 통해 중고차 사고이력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중고차의 차량 이력과 보험 사고 정보 등을 알려줘 소비자들이 허위매물 피해 없이 안전한 중고차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미들맨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가 선보인 온라인 보험슈퍼마켓 ‘보험다모아’도 보험회사별 보험료·보장내용 등을 비교하고 가입 경로를 안내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보험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접근성과 선택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처럼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변화하면서 보험에서도 온라인시스템이 미들맨의 역할을 맡게 됐다.
익숙한 시스템의 변화는 기존 업계의 반발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18세기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은 세계 최초로 28인승 증기자동차를 만들었다. 열차 산업의 이해 당사자들은 수입 감소를 우려해 자동차 규제를 청원했고 영국 의회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등장한 ‘적기조례(Red Flag Act)’는 차량 운전자 수, 중량, 속도 등을 규제했다. 적기조례는 영국 자동차산업을 위축시켰고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은 프랑스, 독일, 미국으로 넘어갔다. 영국의 예에서 보듯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가 국가의 경쟁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미들맨의 시대’에 필요한 경제정책 방향은 무엇일까.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가 일자리와 임금을 늘리기에 한계가 있다면 경제구조의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 대체 가능하고 표준화된 능력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됐다면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특정 이해관계자들의 단합된 목소리로 인해 오히려 국민 전체의 편의와 산업발전을 저해했던 영국의 적기조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보험을 포함한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할 미들맨이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온라인 활성화 정책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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