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35만채 주차장 턱없이 부족… 소음보호-동간 간격 규제서 빠져
MB정부때 도입 늘리다 방치, 생활여건 열악… 공실 증가 추세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최영인 씨(31·여) 아파트엔 대낮에도 볕이 잘 들지 않는다. 최근 집 앞 골목길을 따라 10층 높이의 도시형생활주택들이 10여 m 간격으로 촘촘히 들어서면서 벌어진 일이다. 최 씨는 “주차 공간도 턱없이 부족해 밤마다 단지 근처 2차로 도로가 주차장으로 바뀐다”고 전했다.
2009년 이후 전국적으로 30만 채 이상 지어진 도시형생활주택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닭장 주택’으로 전락하고 있다. 도입 초기부터 주차장, 진입로, 부대시설 관련 규제가 대거 풀려 예고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 주차장도 없는 ‘닭장 주택’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영일 의원(국민의당)이 국토교통부와 각 광역자치단체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8월 현재 전국 도시형생활주택 35만여 채에 딸린 주차장 수는 가구당 0.59면이다. 아파트 등 일반 공동주택(가구당 1면)은 물론이고 현행법상 주차장 설치 기준(0.6면·전용면적 30∼50m² 기준)에도 못 미친다. 특히 전국에서 가장 많은 12만여 채의 도시형생활주택이 들어선 서울의 가구당 주차장 수는 0.54면에 불과했다.
생활편의시설 부족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 강서구의 경우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많은 역세권 이면도로를 중심으로 2013년부터 올해 6월 현재까지 6500여 채의 도시형생활주택이 들어섰다. 놀이터, 화단은 물론이고 관리실과 진입도로도 갖추지 않은 이 주택들이 우후죽순 지어지면서 생활 여건이 악화됐다는 민원이 이어지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부동산 시장에서는 한 층에 여러 채의 원룸이 다닥다닥 배치돼 쾌적성이 떨어지는 이들 주택을 빗댄 ‘닭장 주택’이라는 말까지 나온다”라며 “지난해 초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 화재 참사’ 이후 안전·보안 문제도 불거져 공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 “숫자만 늘리려는 주택정책이 문제”
선보인 지 10년도 안 된 도시형생활주택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건 양적 공급 확대에 치중한 주택정책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량 공급을 위해 규제 완화에 매달려 부작용에 대한 대책 마련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9년 도시형생활주택 제도 도입 당시 정부는 도시형생활주택의 빠른 확산을 목적으로 주차장 설치 기준을 전용면적 60m²당 1면으로 낮췄다. 이 주택들이 대부분 채당 전용면적 30m²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주택 2채당 주차장 1면꼴로 지어진 것이다.
진입도로 폭 기준도 일반 주택의 3분의 2 수준으로 책정됐고, 관리실 설치 의무도 면제받았다. 정부는 올해 6월부터 도로와 관리실 기준을 일반 공동주택 수준으로 높였지만 조경시설, 소음보호, 동간 간격 규제에서는 여전히 예외다.
세종시나 인천시 등은 별도 조례를 통해 주차장 기준 등을 법정 기준보다 강화했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뒤늦게 규제를 강화해도 기존에 지어진 주택에 대해서는 부대시설을 늘리도록 강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입주민이 장기간 살 수 있을 만한 양질의 소형 주택이 공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주택이 필요한 1, 2인 가구는 갈수록 늘고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도시 외곽의 원룸 등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 중인 행복주택 역시 지속적인 품질관리가 뒷받침돼야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 도시형생활주택
정부가 1, 2인 가구의 주거 안정을 위해 2009년 5월 도입한 전용면적 85m² 이하 중소형 주택. 외관상 다세대주택이나 빌라와 비슷하지만 대부분 원룸형으로 지어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도입 당시 정부가 공급 촉진을 위해 주차장·보안·조경시설 규제 등을 대거 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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