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맵 쓰시는 분? 아, 거의 다 쓰시네요. 그렇다면 미국 소방관들이 구글맵을 이용해 화재 현장을 정확히 찾아갈 수 있을까요?”
황창규 KT 회장(63)은 20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시 하버드대의 메모리얼홀에서 ‘네트워크의 힘’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면서 이런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학교 비즈니스스쿨 초청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자리를 가득 메운 학생과 교수 800여 명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황 회장은 “구글맵으론 불가능하다. 구글맵은 야외에서는 오차가 10∼30피트(약 3∼9m)이고, 건물 안에선 100피트(약 30m)까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한국에서는 건물 몇 층, 어느 지점에서 화재가 발생했는지까지 파악할 수 있다. KT의 위치파악서비스 ‘기가 지오펜싱(GiGA Geo-fencing)’은 오차 범위가 1피트(약 30cm)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황 회장의 뒤쪽 대형 스크린에 2차원의 구글맵과 3차원의 기가 지오펜싱을 비교하는 화면이 뜨자 객석에선 “아하!” 하는 탄성이 터졌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세계 통신사업자들은 네트워크 인프라만 제공하는 ‘덤파이프(Dumb Pipe·깡통망)’ 사업자로 전락할지 모른다. 위기돌파 해법은 다른 분야를 기웃거리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 본연의 가치를 높이는 혁신”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황 회장은 KT의 네트워크 혁신을 △속도 △안전감시 △빅데이터 △보안 등 4대 분야로 나눠 설명했다. 안전감시 사례로는 기가 지오펜싱과 함께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 개발 중인 구명조끼를 소개했다. 황 회장은 “조난자 위치 정보와 건강상태 정보 전달 기능까지 갖춰 해상 안전사고 때 생존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속도 혁신에 대해선 “기존 인터넷 속도를 10배 향상시킨 기가인터넷 서비스를 2014년 하반기에 선보였을 때 ‘더 빠른 인터넷 서비스가 필요하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2년도 채 안 돼 200만 명의 가입자를 모았다”고 했다. 네트워크 본연의 가치를 높이니까 시장과 고객이 호응했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도 △빅데이터를 활용해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경로를 90% 이상 정확도로 예측하는 성과를 거둔 사례 △보안 분야에서는 파밍(악성코드를 활용한 전자금융 사기) 차단 솔루션과 개인정보 보호가 가능한 기업 전용 LTE 서비스를 소개했다.
황 회장은 1시간의 영어 강연을 끝내면서 “한 차원 높은 ‘지능형 네트워크’를 추구해야 덤파이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지능형 네트워크는 유·무선망으로 음성, 데이터 등 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네트워크 자체에서 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빠른 속도, 방대한 용량, 완벽한 연결을 바탕으로 네트워크 차원의 부가적인 서비스를 제공해 생활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만들고 산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셰인 그린스타인 종신교수는 “정보통신기술(ICT)의 최강국인 한국에서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황 회장의 열정에 늘 감탄하고 있다. 오늘 강연은 미국 정부의 ITC 관계자들도 새겨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의 하버드대 특별강연은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사장이었던 2005년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사례연구 발표를 위해 5차례 이 대학을 찾았다. 이날 강연장인 메모리얼홀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 등이 강의한 곳이다. KT 측은 “황 회장의 메모리얼홀 강연은 한국인으로선 처음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날 황 회장이 소개한 KT의 기가토피아 전략은 내년 하버드경영대학원(HBS) 교재에 사례 연구로 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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