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들에 ‘옛 동독 특허’ 지원…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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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희망이다/창업가 키우는 글로벌 공대]
통독 후 자본주의 교육기관 탈바꿈… 옛 동독지역 경제부흥 이끌어
1998년 창업지원 프로그램 첫선… 특허 빌려주고 주식 10% 받아
교수들도 학생들과 함께 창업 나서

 
독일 드레스덴공대 캠퍼스 잔디에서 많은 학생이 눕거나 앉아 쉬고 있다. 옛 동독 지역에 위치한 드레스덴공대는 동독 시절부터 축적해 온 특허를 바탕으로 창업 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드레스덴의 실업률은 통일 이후인 1990년대 20%에 육박했지만 드레스덴공대의 창업 노력 등에 힘입어 지난해 7.6%로 떨어졌다. 드레스덴공대 제공
독일 드레스덴공대 캠퍼스 잔디에서 많은 학생이 눕거나 앉아 쉬고 있다. 옛 동독 지역에 위치한 드레스덴공대는 동독 시절부터 축적해 온 특허를 바탕으로 창업 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드레스덴의 실업률은 통일 이후인 1990년대 20%에 육박했지만 드레스덴공대의 창업 노력 등에 힘입어 지난해 7.6%로 떨어졌다. 드레스덴공대 제공
13일 정오 옛 동독 지역인 독일 작센 주 드레스덴공대를 방문했을 때 교정 이곳저곳에서는 부족한 연구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인근에는 프라운호퍼, 막스플랑크 등 독일 4대 과학기술 연구기관의 분원이 입주해 이 일대는 거대한 과학기술 공동연구단지로 변모한 상태였다. 1990년 10월 3일 통일되기 전 낡고 어둡던 사회주의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캠퍼스에서 만난 자샤 바흐 박사(38)는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숨은 우량 기업인 ‘히든 챔피언’을 꿈꾸며 동료 3명과 함께 올해 3월 회사를 세웠다. 그는 기계공학 박사과정에서 프라운호퍼 연구소 등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에너지 효율을 대폭 높이는 포장기계를 개발했다. 바흐 박사는 “기술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다. 학생과 교수, 학교와 연구기관들이 공동으로 이뤄낸 ‘독일식 집단주의’의 결과였다.

○ 창업으로 동독 경제 부흥 이바지

 
통일 초기인 1990년대 인구 45만 명이던 작은 도시 드레스덴의 실업률은 20%에 육박했다. 다섯 명에 한 명은 실업자였다. 동독 출신을 일컫는 ‘오시(Ossi)’들은 서독에서 밀려온 ‘베시(Wessi)’에게 밀려 일자리를 빼앗겼다. 성난 오시들이 서독으로 이주하면서 인구도 줄었다. 창업은 통독 이후 극심한 경제 위기에 내몰렸던 드레스덴의 절박한 선택이었다. 동독 공산당에 충성하는 낡은 사회주의 기술자를 배출하던 드레스덴공대는 지역 경제의 미래를 위해 창업가를 길러 내는 자본주의 교육기관으로 과감하게 변신했다. 미하엘 셰프치크 드레스덴공대 상경학부 교수는 “드레스덴에는 대기업 본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뮌헨에 있는 BMW, 지멘스가 드레스덴으로 본사를 옮길 확률은 거의 없다. 결국 옛 동독 지역에서 경제 재건을 하려면 창업으로 ‘히든 챔피언’을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고 회고했다.

 1998년 경상학부 교수였던 옛 동독 출신의 헬무트 자비시 씨는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은 창업지원 프로그램인 ‘드레스덴 이그지스츠(Dresden Exists)’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드레스덴 이그지스츠는 창업실무 교육, 투자 유치, 창업 컨설팅 등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탄생한 창업가들에게 독일 연방정부의 지원이 이어지면서 드레스덴은 최근 10여 년 동안 기업 수가 꾸준히 늘어 ‘유럽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릴 정도다. 드레스덴 시에 따르면 2004년 4만1012개이던 등록 기업이 2014년 4만9541개로 증가했다.

 드레스덴의 실업률은 지난해 7.6%까지 떨어졌다. 독일 평균실업률(6.2%)보다 높은 편이지만 수도 베를린(10.5%)보다는 현저히 낮다.

○ 지식재산의 사회적 공유로 시너지 창출

 드레스덴 부흥의 핵심에 섰던 드레스덴공대의 강점은 역설적으로 옛 동독의 유산에서 나왔다. 사회주의 국가인 옛 동독은 교수들의 연구 성과로 얻은 특허를 당연히 대학의 자산으로 책정했다.

 통일 이전 유럽 명문 공대로 꼽히던 드레스덴공대는 생명공학, 전자공학 등의 분야에서 다수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베를린공대 뮌헨공대 등 9개 독일 명문 공대가 확보한 전체 특허의 30% 이상이 드레스덴공대 것이다. 하네스 레만 드레스덴공대 연구진흥 및 기술 이전 담당 국장은 “통독 후 대학은 돈이 없는 창업 기업에 특허를 공짜로 빌려주고 그 대신 주식을 10% 받는 방식으로 전략적 협력을 했다”고 말했다.

 드레스덴공대는 또 2010년 프라운호퍼, 막스플랑크 등 드레스덴 소재 연구기관과 ‘드레스덴 콘셉트’라는 협의체를 만들어 소속 기관의 시설과 지식재산 등을 공유했다. 드레스덴 콘셉트 담당자 조냐 피오트로브스키 씨는 “거대한 클러스터를 형성해 연구, 창업 등 과학기술 관련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교수와 학생이 함께 뛰는 ‘토털 창업’

 드레스덴공대의 창업 형태도 모두가 함께 뛰는 독일 축구와 유사한 ‘토털 창업’이라 할 만하다. 독일 공대의 창업은 대학, 연구소 등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토대로 기업을 세우는 스핀오프(spin-off)가 주류다. 학생들은 졸업하기 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최소 15주 동안 기업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미하엘 베크만 기계공학부 교수는 “기업은 작은 프로젝트에 참여할 일손을 구하고 학생들은 실무를 배울 수 있어서 서로 이득”이라고 말했다.

 교수들도 학생들과 창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옌스페터 마이샤크 기계공학과 교수는 1990년대 박사과정 당시 교수, 동료들과 함께 두 차례 창업했다. 드레스덴공대에서 교수로 임용된 2004년부터 제자들과 3개의 기업을 만들었다. 마이샤크 교수는 매년 20∼40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기업, 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숱한 프로젝트 가운데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골라 창업한다”며 “성공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창업은 준비 기간만 몇 년이 걸릴 정도로 미국 등의 사례와 비교할 때 다소 더딘 편이다. 그 대신 생존율은 60%에 달한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시작하는 독일인 특유의 근성이 반영된 결과다.

드레스덴=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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