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3%(저축은행) vs 4.24%(시중은행).’ 2016년 7월 현재 은행과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20%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난다. 1000만 원을 빌리면 은행은 42만4000원, 저축은행은 약 6배인 232만3000원의 연 이자를 물어야 한다. 은행 밖으로 밀려나면 깊은 금리절벽이 기다리는 것이다. 은행 문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은행에서 대출받는 사람의 79%는 1∼3등급의 고(高)신용자다. 이런 사람은 전체 금융소비자(1498만 명)의 35.6%(534만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4∼7등급(698만 명)은 은행 문턱을 맴돌고, 이보다 못한 8∼10등급(266만 명)은 금리절벽으로 직행한다. “2금융권으로 한번 떨어지면 평생 빚만 갚아야 할 수도 있어요. 1금융권과 2금융권 사이의 가파른 절벽에 사다리를 놓으면 양극화와 부의 재분배 해결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14년 말 임신 3개월의 몸으로 가파른 금리절벽의 한가운데에 사다리를 놓겠다고 창업한 30대 전직 은행원이 등장했다. 중(中)금리 시장의 개척자로 꼽히는 개인 간 거래(P2P) 대출회사 8퍼센트의 이효진 대표(33)다. 회사 이름도 중금리를 뜻하는 8퍼센트다. 지난주 그를 서울 종로구 8퍼센트 사무실과 강남구 영동대로 코엑스에서 열린 ‘2016 동아재테크·핀테크쇼’ 강연장에서 잇따라 만났다. 》
―중금리는 왜 사각지대가 됐을까요.
“금융회사의 영업과 관리 비용이 너무 높아요.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시켜 주는 중개 부분이 비대해진 거죠. 은행이 돈을 벌려면 주거래 고객을 유지하면서 카드 보험 등을 교차 판매해야 하는데,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겐 팔 것도 없습니다. 위험만 크고 효율이 떨어지니 중금리 대출을 할 이유가 없는 거죠.”
중간 금리로 대출 사다리 놓고
―은행도 못 하는 중금리 대출을 어떻게 한다는 거죠.
“기술이 발전했으니까요. 온라인과 모바일로 중개를 해 돈이 공급자와 수요자를 스치듯 지나갈 수 있게 됐어요. 많은 인력이나 영업점 없이도 개인별로 리스크를 정확하게 심사할 수도 있죠.”
P2P 대출은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핀테크(금융기술) 플랫폼이다. 미국 중국 등에서 대안 금융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말 현재 P2P 대출 잔액은 미국 120억 달러(약 13조2000억 원), 중국은 667억 달러(약 73조3700억 원)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말 350억 원에서 올해 6월 말 현재 1100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돈을 빌려주나요.
“자체 신용평가와 사기감별 시스템을 운영해요. 과거 금융거래 정보와 지불 능력인 현금 흐름을 많이 봐요. 저금리 시대여서 한 달에 300만 원의 수입이 있으면 현금성 자산 20억 원의 이자 수익을 올리는 것과 비슷하니까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에 올린 정보 등도 살펴봐요.”
8퍼센트는 매일 낮 1시에 홈페이지에 심사를 통과한 대출 희망자 정보를 올린다. 대출 목적, 모집 금액, 만기, 수익률, 신용도 등을 공개하면 투자 고객들이 선택한다. 금리는 5∼14%다. 김영환 전 국회의원(국민의당), 걸그룹 멤버, 타워팰리스 주민 등이 8퍼센트 대출을 받아 화제가 됐다.
―어떤 사람들이 돈을 빌리나요.
“담보 없이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운 소상공인 등이죠. 서울 이태원에서 유명한 수제 맥줏집인 ‘더부쓰’의 경우 밤 12시에 투자를 받기 시작했는데, 막 돈이 들어오는 거예요. 단골 고객들이 투자자로 나섰기 때문이죠. 다음 날 아침 투자를 못 했다는 항의전화까지 받았어요. 그때 ‘아, 소비자들은 이런 금융을 원하는구나, 금융도 얼마든지 펀(fun)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더부쓰는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칼럼을 써 화제가 된 대니얼 튜더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 등이 차린 수제 맥줏집이다. 더부쓰 이후 막걸리집부터 자동차 공유 서비스 회사인 ‘쏘카’, 태양광회사인 ‘에스파워’ 등 스타트업까지 8퍼센트의 문을 두드렸다. 8퍼센트의 누적 대출액은 지난주 400억 원을 넘었다. ―대출을 받고 어떻게 됐나요.
“더부쓰는 빌린 돈을 조기 상환하고 병맥주까지 생산 유통하고 있어요. 막걸리집도 매출이 늘어 2호점을 낸다고 해요. 차량 공유 서비스 회사인 쏘카는 우리 쪽에서 13억 원을 조달해 차량을 구매했죠. 4번에 걸쳐 다 상환했어요.”
쏘카 창업자인 김지만 풀러스 대표가 먼저 8퍼센트의 문을 두드렸다. 차를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쏘카의 ‘공유경제(Sharing Economy)’ 가치가 여러 사람이 함께 펀딩하는 8퍼센트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아 자금 조달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소상공인 지원은 정부도 하기 어려운 일인데요.
“아직도 자금 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곳이 구석구석에 있어요. 기존 금융회사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이런 곳을 찾아내 돈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거죠. 더부쓰 단골들이 8퍼센트의 투자자 고객이 되고, 우리 고객이 더부쓰 단골이 돼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대출 규모가 커지면서 연체율이 오르고 있는데….
“아직은 연체·부도율이 1%대로 관리 목표(2%대 초반) 이하입니다. 연체가 발생하면 모형을 개선합니다. 투자자들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심사를 통해 대출 신청자의 5% 정도만 자금을 지원해요. 자동분산투자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500만 원을 한 사람에게서 빌리는 게 아니라 5만 원씩 100명에게 빌리도록 한 거죠. 가입금에서 일부 금액을 미리 떼서 기금을 만들고 대출자가 부도를 내면 손실을 보전해주는 장치도 마련했습니다.”
美 부정대출 사태로 교훈 얻어
―5월 미국의 P2P 대출 회사인 랜딩클럽의 부정대출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줬습니다.
“기관투자가들이 요청한 요건에 맞지 않는 대출이 끼어 있어 문제가 됐어요. 창업자가 이걸 묵과한 것이죠. 회사가 커지면 내부 통제가 중요하고 최고경영자(CEO)도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한 랜딩클럽은 뉴욕증시에 상장하며 85억 달러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부정 대출로 창업자가 퇴출됐다. 2014년 5월 8년간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창업을 준비하던 이 대표가 두 달 동안 미국 실리콘밸리를 돌면서 창업 여행을 하며 처음 방문한 곳이 랜딩클럽이었다.
―한국의 P2P 산업도 단기간에 급성장해 부실대출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내년 하반기엔 옥석이 가려질 겁니다. 창업 2, 3년차쯤 되니까요. 랜딩클럽 이사회가 창업자이자 CEO를 해임하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이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아직 적자죠?
“수수료가 수익 모델인데 다 받진 못해요. 내년 하반기나 2년 뒤쯤 대출 규모가 1000억 원을 넘고 수수료로 2∼3% 정도를 받는다면 흑자 전환이 될 것으로 보고 있어요.”
―임신까지 하고 창업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출산 전까지 조직이 돌아가게 해놔야 한다는 데드라인과 목표가 생겨 오히려 더 속도가 났어요. 창업한 지 일곱 달 만에 딸을 낳고 한 달 반의 육아휴직에 들어갔어요. 직원 채용 면접도 산후조리원의 로비에서 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가장 큰 성장을 했어요.”
서울 한성과학고와 포스텍(포항공대) 수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은행에서 8년간 일하며 주식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활동했다. 그는 “4000억 원을 혼자 굴린 적도 있지만 지금 굴리는 400억 원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대출자가 투자자로 돌아오게 할것
―창업 초기 규제에 막힌 핀테크 업계의 ‘천송이 코트’로 알려져 논란이 됐죠?
“당시 공인인증서 때문에 중국인들이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인기 드라마 여주인공이 입고 나온 ‘천송이 코트’를 살 수 없다는 식의 규제 개혁 얘기가 한참 나올 때여서 더 부각됐던 것 같아요. 여론이 저한테 우호적이어서 깜짝 놀랐어요. 많은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이 대표는 창업 초기인 2015년 1월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고 시범서비스를 하다가 당국의 징계를 받았다. 그가 만든 8퍼센트 초기 화면에 성인 음란 사이트처럼 ‘불법 유해 사이트’ 경고문이 내걸렸다. 그를 조사했던 금융당국 관계자는 “험상궂은 대부업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배가 불룩한 임신부가 나타나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8퍼센트는 당국의 조언대로 대부업 등록을 하고 서비스를 재개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겁니까.
“지금 세상을 바꾸는 건 기업가들입니다. 그동안 금융이 가장 도전이 없었던 영역인 것 같아요. 이제는 과감한 도전이 나와야 해요. 돈이 목표라면 돈을 벌고 나면 사업을 끝내야 하잖아요. 그건 과정인 거고, 진짜 목표는 아니죠. 다른 사람의 삶을 좋은 쪽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대출자가 투자자로 돌아와서 고객이 되는 것’이 제가 바라는 미래입니다. 이미 그런 분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8퍼센트에는 미션이 두 가지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1번 사회에 기여한다, 2번 불가능에 도전한다. 금융업을 하다가 커피 장사를 하더라도 이 두 가지는 꼭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 이효진 대표는 ::
△ 1983년 서울 출생 △ 2002년 서울 한성과학고 졸업 △ 2006년 포스텍 수학과 졸업 △ 2006∼2014년 우리은행에서 기업금융 파생상품 트레이딩 담당 △ 2014년 11월 8퍼센트 창업 △ 2015년 6월∼2016년 5월 한국P2P금융협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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