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만난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우리(삼성전자)의 강점은 제조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프트웨어 산업이 하드웨어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제조업도 결코 아무나 잘하는 게 아니다”라며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소프트웨어 회사들도 제조업은 못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마침 삼성전자 안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로의 변신이 필요하다는 분위기와 함께 ‘스타트업 컬처 혁신’이 한창이던 때라 더 인상적으로 느껴진 말이었다. 그 뒤로 ‘갤럭시 S7’ 시리즈가 전작들의 실패를 딛고 성공한 데 이어 ‘갤럭시 노트7’까지 엄청난 초기 흥행몰이를 했을 땐 그가 말한 제조업의 힘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최근 예상치 못했던 갤럭시 노트7 리콜 사태가 불거졌다. 이달 2일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이 리콜 기자회견 당시 밝힌 “100만 대 중 24대꼴”이라던 불량률은 한 달 새 무섭게 높아졌다. 처음엔 문제가 된 배터리 납품 업체가 친 ‘대형 사고’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정도 불량률을 잡아내지 못한 삼성전자 검수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장 며칠 뒤부터 판매를 재개하는 삼성전자 앞에 놓인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 것이 가장 큰 타격이다. 그동안 삼성전자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눈엣가시처럼 지켜봤던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25일 미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업체인 브랜딩브랜드가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소유한 미국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34%가 “삼성전자의 다른 스마트폰을 사지 않겠다”고 답했다. 중국 모바일 인터넷 컨설팅회사 ii미디어리서치가 1만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1.9%가 “앞으로 삼성 스마트폰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그래도 다행인건 최근 10년간 삼성전자가 글로벌 1위 제조업체로서 벌어둔 시간이 아직 있다는 거다. 운영 체제(OS)가 다른 애플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안드로이드 진영에선 당장 삼성전자를 대체할 만한 경쟁사가 없다.
2014년 10월 ‘아이폰6 플러스’의 벤드게이트(사람 손으로 쉽게 구부러진다는 논란)가 불거졌을 때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의 ‘신뢰성연구소’를 찾아간 적이 있다. 시장에 나오기 직전인 스마트폰을 비틀고 부수고 깨뜨려 보는 품질 테스트 공간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고객은!! 아무리 작은 실수도 용서하지 않는다’는 플래카드가 벽에 걸려 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남은 시간 동안 삼성전자가 초심으로 돌아가 삼성전자가 제일 잘하는 일을 잘해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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