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한-영 ICT 정책포럼 참석차 영국을 찾았을 때, 3월 인간 대 기계의 바둑 대결로 우리나라에 ‘알파고 신드롬’을 불러온 구글딥마인드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하사비스는 기대 이상의 관심과 환대에 감사하면서도, 자신들이 개발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에 대한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당시 이벤트가 벌어진 직후, 딥마인드의 모기업 구글은 주가 상승은 물론 세계적으로 상당한 기업홍보 효과를 누렸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알파고 쇼크를 눈앞에서 지켜본 우리 국민들이 ‘제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지능정보사회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세기의 대결이 가져다 준 바람직한 부대 효과였다.
이처럼 소프트웨어 업계를 넘어 세계 경제,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몰고 온 알파고를 만들어 낸 딥마인드는 아이디어뿐이었던 영국의 작은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이었다. 그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공룡기업 구글의 인수합병과 적극적인 투자는 결국 구글과 딥마인드 모두를 승자로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계의 성공 방정식이자, 모두가 윈윈 하는 ‘상생(相生)’의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이러한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계의 흐름은 우리 업계의 현실과 일면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정책 현장에서 만난 어느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 대표는 “우리 소프트웨어 업계는 상생(相生)이 아닌 상생(上生)의 길을 걷고 있다”고 호소한다. 공공과 민간기업,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합리한 원도급-하도급 관계나 무리한 사업영역 침범과 같은 비정상적 수직 관계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얘기다. 제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고자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골든타임에 이 같은 상생(上生)형 악습의 그림자는 경쟁력 자체를 약화시키는 자승자박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그동안 이러한 ‘상생(相生)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공공기관의 소프트웨어 개발이 민간 시장에 불필요한 경쟁을 야기하지 않도록 ‘소프트웨어 영향평가제도’를 도입했고, 공공부문의 소프트웨어 사업 추진 시 50%를 넘는 과도한 하도급을 제한하는 등 불합리한 수직구조를 개선하는 데도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
앞으로 우리 소프트웨어 업계가 치열한 글로벌 혁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히 악습의 혁파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된다. 업계 이해관계자는 물론 정부, 개개인 모두가 갑을 관계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서로를 성장의 동반자로 인식하는 ‘상생(相生) 무드’ 배양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단지 불합리한 관행 개선의 차원을 넘어,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대기업의 축적된 경험과 자본력, 중소기업의 아이디어와 전문성이 놀라운 시너지를 일으킨 알파고의 성공 사례는 과연 상생(上生)이 답인지, 상생(相生)이 답인지를 너무나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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