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에 대해 26일 검찰이 1750억 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어제 법원에서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판사는 “범죄 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로써 6월 10일 대규모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110일 넘게 벌인 검찰의 롯데 수사는 초라한 피날레를 고하게 됐다.
서울중앙지검은 29일 “피의자의 변명에만 기초해 영장을 기각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검찰은 롯데 총수 일가(一家)의 대규모 비자금 조성 단서와 정황을 포착했다며 수사에 착수하고도 이를 밝혀내는 데 실패했다. 신 회장에게 적용한 대규모 횡령과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법리적 논란이 없지 않다.
이번 수사는 검찰이 전 계열사를 전방위로 뒤졌으나 계열사 관계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됐다는 점에서 2011년 한화 수사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 뒤 재벌 수사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 2013년 말 김진태 당시 검찰총장은 환부만을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를 강조했다. 당시 검찰은 한화 김승연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를 포기했지만 이번 검찰은 신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데 따른 부담을 덜고 법원에 판단을 미루고 싶었을 것이다.
대기업 총수건 누구건 법을 어겼으면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중하게 처벌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원칙이다. 그러나 차떼기 압수수색과 무더기 출국금지조치부터 한 뒤 그룹 전체를 이 잡듯이 뒤지는 수사 관행은 문제가 있다. 그러고도 별다른 수사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면 검찰권 행사가 무리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8개월 넘게 질질 끌고도 용두사미로 끝난 지난해 포스코 수사의 전철(前轍)을 밟은 것을 검찰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신 회장은 영장 기각 직후 “책임지고 고쳐 좀 더 좋은 기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오너 일가의 전횡과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 같은 말이 다시 나오지 않도록 재계 5위 대기업에 어울리는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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