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일 철강·석유화학산업에 대한 연구개발(R&D)에 1조2500억 원이 넘는 투자계획을 내놓은 것은 민간기업들의 자율적인 사업 재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정부가 앞장서 리스크가 큰 고부가 품목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을 테니 민간기업들도 서둘러 동참해달라는 것이다. 철강과 석유화학 등 두 산업 모두 선제적인 사업 재편이 없을 경우 조선과 해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상황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과잉설비 조정과 미래 먹거리 창출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컨대 철강 후판은 조선 수주 절벽과 저유가에 따른 자원개발 침체로 심각한 공급과잉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철강업체들이 스스로 후판 감축 방안을 마련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고부가 철강재와 경량소재 개발에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석유화학의 경우에도 테레프탈산(TPA), 폴리스티렌(PS) 합성고무 폴리염화비닐(PVC) 등 공급과잉으로 확인된 품목은 자발적 설비감축을 유도하고 미래소재·정밀화학·친환경 등 3대 핵심 소재 개발을 집중 지원한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탓에 업계 일각에선 기업들이 얼마나 자율적으로 사업 재편에 나설지 의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해운업의 경우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채권단에 맡겨 놨다가 끝내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가고 물류대란을 불러왔다.
기업들은 ‘선제적인 사업 재편이 필요하다’는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정부가 제시한 사업 재편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선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철강업체들은 후판 설비조정이 근시안적 대책이라 비판하고, 석유화학업체들은 뻔한 대책에 불과하다는 반응이다. 이에 도경환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반실장은 “정부가 방관하지 않고 국제통상 수준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역할을 충분히 하겠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