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남성보다 더 남을 배려하고 더 다정하고 더 애정이 깊으며, 따라서 우정에도 더 적합한 존재라는 생각이 자리 잡은 것이다.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메릴린 옐롬·책과 함께·2016년)
우정이라는 단어는 한동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백사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의 ‘오성과 한음’ 이야기가, 중국에서는 춘추시대 관중과 포숙아에서 비롯된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사자성어가 우정을 대변해 왔다. 이들의 관계는 형편이 어려워도 서로 돕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헌신, 동지애, 유대감 등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저자는 남성 중심의 역사에 가려져 왔던 여성의 우정을 찾아 나선다. 17세기 이후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에서 여성들이 나눴던 편지와 대화 등을 토대로 여성들이 남성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유대 관계를 맺어 왔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20세기 이후 사회가 바뀌면서 여성들의 우정이 남성들의 것보다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애정, 자기 드러내기, 상호 의존, 스킨십 등 여성들의 우정이 갖는 특징이 오늘날 “약화된 가족의 유대감, 과다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받아 줄 유일한 안식처”로서의 우정에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반면 남성들의 우정은 과거보다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강인하고 자립적이라는 이미지만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남자들은 시대의 변화로 우정에 의존할 필요성이 커졌지만 이를 제대로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20세기 이후 친구는 권력에 기반을 둔 수직적 관계보다 상대에게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공유하는 수평적 관계가 요구된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남성들은 여전히 권력을 앞세우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데 미숙하다.
저자의 주장에 비추어 보면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진경준 전 검사장(49)과 김정주 NXC 회장(48)의 관계, 김형준 부장검사(46)와 고교 동창 김희석 씨(46)의 관계는 우정이 아닐 것이다. 이들은 우정을 앞세웠지만 돈을 주고받으며 이익을 찾았다. 필요에 의한 관계였을 뿐 감정을 공유하지는 못했다. 이들이 이 책을 미리 읽었다면 이번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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