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계가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곳은 ‘권부(權府)의 상징’ 청와대가 아니다. 경제부처들이 몰려 있는 정부세종청사는 더더욱 아니다. 온갖 특혜를 누리면서도 책임은 안 지는 의원들이 군림하는 국회의사당이다. ‘여의도 리스크’란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여의도 리스크’에 촉각
영국 저널리스트 존 미클스웨이트 등은 지구촌 기업들의 발자취를 정리한 ‘기업의 역사’에서 이렇게 썼다. “한 국가가 자랑할 수 있는 사기업의 숫자가 그 나라가 동원할 군함의 숫자보다 국력을 가늠하는 잣대로서 보편타당성이 훨씬 크다.” 세계 각국이 자국 기업을 챙기는 것도 국가의 위상과 국민의 삶에 그만큼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을 한국으로 돌려보면 걱정이 앞선다. 20대 국회에서 입법 권력을 장악한 거대 야당들이 쏟아낸 의원입법은 기업을 키우기는커녕 옥죄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와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은 기업 경영권을 위협할 대표적 악법이다.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기업에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가 시행되면 해외 자본이 펀드 연합이나 지분 쪼개기를 통해 감사위원 3명을 모두 차지할 수 있다. 반면 국내 최대주주는 3% 의결권 룰에 묶여 한 명도 선임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와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결합하면 이사회의 다수를 외국계 자본들이 장악해 국내 최대주주가 경영권을 상실할 위험성이 높아진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다. 집중투표제도 일본의 경우 1950년대 의무화했다가 부작용이 커지자 1974년 상법을 개정해 선택사항으로 바꿨다. 많은 나라에서 도입한 황금주나 포이즌필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도 한국에는 없다.
미국 헤지펀드 소버린은 2003∼2005년 SK에 대한 경영권 공격을 통해 1조 원 가까운 차익을 챙기고 철수했다. 작년 삼성을 공격한 엘리엇이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투표제라는 무기를 가졌다면 삼성도 극심한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야당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투기자본 배만 불릴 위험성이 높은 상시적 경영권 위협 법”이라고 경고한다.
해외 투기자본의 ‘공습’ 때 일각에서는 “한국 기업에 문제가 많다”며 은근히 투기세력을 편들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 기업이나 대주주들의 행태가 때로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기업의 발전이나 고용에는 관심이 없고 경영권을 위협한 뒤 고액의 배당과 핵심 자산 처분, 대규모 감원을 통해 막대한 차익만 챙기고 ‘먹튀’할 투기자본의 폐해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
대기업을 적대시하는 사람들도 막상 자기 자식이 취직할 때는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을 선호한다. 국내외 경제 악재가 산적한 현실에서 상법 개정안이나 법인세 인상 같은 ‘규제입법 폭탄’까지 겹치면 나와 가족들의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팍팍해질 것이다.
‘규제입법 폭탄’ 막아야
거야(巨野)가 우물 안 개구리 식의 기업관을 끝내 고집하겠다면 내년 대선에서 집권한 뒤 관련 법안들을 처리하고 선택의 결과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 만약 현 정부 임기 내에 야당이 법안을 밀어붙여 통과시킨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망설일 것 없이 거부권을 행사해 제동을 걸어야 한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나 규제프리존특별법 같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비극도 안타까운데 기업과 국민, 나라를 더 힘들게 만들 위험성이 농후한 ‘과잉규제 입법 폭탄’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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