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올해 쌀 생산량 420만 t 가운데 수요량 390만∼395만 t을 넘어선 30만 t을 모두 사들인다는 ‘수확기 쌀 수급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4년 연속 풍년으로 최근 급락한 쌀값의 안정을 위해 세금을 투입해 추가 수매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에 비해 쌀 대책을 일찍 발표한 이유를 김 장관은 “쌀값 하락 추세가 예년보다 빠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어제 ‘청와대 벼 반납투쟁’ 농민대회를 벌이겠다며 서울 한남대교 남단에서 14시간 넘게 경찰과 대치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쌀값이 급락하는 것은 쌀 소비 감소와 영농기술 향상으로 쌀이 남아도는데도 쌀농사를 줄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중 쌀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직접지불금 제도로 소득을 보전해주고, 쌀 생산이 늘면 추가로 쌀을 사주니 농가에선 쌀농사를 줄일 이유가 없다. 올해 생산되는 420만 t의 시장가치가 7조1116억 원인데 쌀값 안정을 위해 투입되는 재정이 무려 3조2500억 원이다. 이렇게 쌓아둔 쌀이 올해 200만 t을 넘었다. 국민이 1년간 먹을 물량이 양곡창고에 쌓였는데 ‘식량안보’만 강조할 게 아니다. 쌀 200만 t을 보관하는 데만 연간 6320억 원이 들어간다니 이런 애물단지가 따로 없다.
논 면적당 지급하는 고정직불금에, 쌀값이 목표가격 아래로 떨어지면 차액의 85%를 메워주는 변동직불금까지, 천문학적 돈을 집어넣는 쌀 농업을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인지 답답하다. 쌀값이 떨어지면 보전해주는 변동직불제는 일본도 포기한 제도다. 쌀농사를 줄이기 위해선 직불금제 개편이 시급하지만 김 장관은 어제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현 정부에선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최근 당정(黨政)은 절대농지를 해제해 쌀 재배면적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지만 이것도 김 장관은 “연말까지 추가적인 농지 정비 계획을 세우겠다”고 했다. 전농처럼 투쟁적 단체가 반대하는 농정개혁을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해낼지 의문이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때부터 역대 정부가 쌀 시장 개방만큼은 막은 결과가 오늘날 쌀 문제를 증폭시킨 근본 원인이다. 농촌지역 출신 정치인들은 목소리 큰 농민단체에 등 떠밀려 쌀 목표가격을 높이라고 정부를 몰아붙이기만 할 게 아니다. 기존 논에 다른 작물을 심어도 쌀 보조금을 지원하면 청년들의 창농(創農) 의지를 북돋울 수 있다. 한국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김 장관은 직불금 문제 등 농업개혁에 직(職)을 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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