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조 원 규모의 기업공개(IPO) 계획을 발표했던 건설장비회사 두산밥캣이 수요 부족으로 상장 일정을 전격 연기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함께 올 하반기(7∼12월) 공모주 시장의 ‘최대어’로 꼽힌 두산밥캣 상장이 사실상 흥행에 실패하면서 기업공개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두산 계열사들의 자금 조달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산밥캣은 10일 공시를 통해 증권신고서를 철회하고 상장 일정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기관투자가들의 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공모 가격이 희망 공모가(4만1000∼5만 원)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밥캣 측은 “공모 물량이 많았던 점 등 몇 가지 시장 여건과 맞지 않는 요인이 있었다”며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두산밥캣은 조만간 증권신고서를 다시 제출한 뒤 다음 달 상장을 재추진할 예정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두산밥캣이 공모가 논란과 대규모 물량 부담을 넘지 못하고 흥행에 실패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두산 측은 4898만1125주 공모를 통해 최대 2조4491억 원을 조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 “한국 기계회사들과 비교해 공모가가 다소 높다”는 문제를 제기하며 김을 뺐다.
공모주 시장에 거품이 끼었다는 우려도 두산밥캣 상장의 걸림돌이 됐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새내기주(株)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를 포함해 45개 종목이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25개 종목 주가(7일 종가)가 공모가보다 낮다. 지기호 LI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부터 공모주가 투자자들의 인기를 끌면서 올해 IPO에 나선 기업들의 주가가 고평가되는 흐름이 나타났다”며 “하지만 새내기주 주가가 부진한 모습을 보여 투자자들의 실망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최근 공모주 시장에서 청약 미달과 상장 철회가 이어지고 있다. 코스닥시장 상장을 추진하던 산업용 기계 중개업체 서플러스글로벌도 수요 예측 부진으로 7일 상장 철회했다. 4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화승엔터프라이즈의 청약 경쟁률은 0.43 대 1에 불과했다. 지난달 상장한 엘에스전선아시아는 2.98 대 1의 부진한 청약 경쟁률로 공모 가격을 크게 낮춰 상장했다. 두산밥캣의 흥행 부진에 연말 상장을 앞둔 IPO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넷마블게임즈 등의 흥행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공모주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코스닥 상장을 앞둔 제조업체 앤디포스는 5일 공모주 청약 결과 경쟁률 524 대 1에 청약 증거금 3조2760억 원을 끌어모았다. 필름 분야 특허 등을 내세워 투자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국내 한 증권사의 IPO 담당 임원은 “경쟁력이 있고 주가가 오를 만한 기업의 IPO에 관심이 집중돼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의 IPO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두산밥캣 상장 연기로 두산 계열사들의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핵심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는 내년까지 6500억 원 규모 공모회사채 상환을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 이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신용등급(현재 ‘BBB’)이 추가 강등될 수 있다. 나이스신용평가 측은 “두산인프라코어 신용도 개선을 위해서는 두산밥캣 상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두산인프라코어(―7.22%), 두산중공업(―2.67%) 등 두산 계열사 주가가 하락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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