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내토시장 번개 세일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멍텅구리 떡집에서 한 팩에 2000원인 한방보리떡을 딱 50개만 1000원에 드립니다.”
지난달 26일 오후 충북 제천시 풍양로의 내토전통시장. 주중 오후 3∼5시, 이곳에선 번개 세일을 알리는 방송이 울려 퍼진다. 이날 방송이 시작되자 멍텅구리 떡집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약재인 황기, 하수오와 보릿가루를 넣고 만든 한방보리떡은 평소에도 인기 있는 간식거리다. 방송이 끝나자 떡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번개 세일 상품은 1인당 1개로 제한한다. 이날 세일을 시작한 지 약 15분 만에 준비한 떡 50개가 모두 동났다. ○ 손님 발길 붙잡는 ‘번개 세일’
번개 세일은 내토시장의 대표 이벤트다. 회원 점포 56곳이 돌아가면서 매일 한 품목씩 정해 30∼50점만 선착순 원가 세일을 한다. 어떤 상점에서 어떤 품목을 할인하는지는 그날 방송을 통해 알 수 있다. 2009년 시작한 번개 세일은 처음엔 매주 화요일 상점 3군데가 참여했었다. 그러다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하루에 한 가지만 할인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시장 상인들은 번개 세일을 두고 일종의 ‘미끼 상품 전략’이라고 말했다. 할인 상품을 사러 시장에 온 손님들이 다른 것도 함께 산다는 것이다. 처음엔 오래된 상품이나 불량품이 아닌지 의심하던 사람들도 질 좋은 상품을 싸게 판다는 걸 확인한 뒤 할인 상품을 사러 시장에 왔다. 시장 2층에 마련된 ‘시장통방송국’도 내토시장의 자랑거리다. 이곳에선 시민 DJ들이 돌아가며 소소한 이야기와 음악을 전해 주며 장보기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이날은 황정임 씨(49·여)가 마이크를 잡았다. 마침 오전 한때 가을비가 내린 터라 빗소리와 어울리는 음악이 시장 안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1년에 3, 4차례 열리는 ‘찾아가는 시민노래자랑’은 시장에 오지 않는 손님들을 직접 찾아 나서는 이벤트다. 제천 시내 동네마다 아파트를 찾아다니며 주민 행사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노래자랑을 연다. 경품으로 이곳 시장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을 나눠 주기 때문에 젊은층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크다. ○ “할인 쿠폰 쓰러 다시 오세요”
내토시장은 1970년대 길 건너 제천 중앙시장의 난전(亂廛)으로 형성된 곳이다. 중앙시장은 한때 강원도나 경북에서 찾아올 만큼 번성했다. 중앙시장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 할머니들이 이곳에 보따리를 펼쳐 놓고 물건을 팔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됐다. 채소, 과일, 생선, 정육 등 1차 식품을 주로 팔았다. 2007년 상인회가 출범한 뒤 ‘내토전통시장’이란 정식 이름이 생겼다. ‘내토’는 제천을 가리키는 옛 지명(地名)이다.
내토시장이 지금처럼 자리를 잡게 된 데는 상인들의 남다른 노력이 숨어 있다.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시설을 현대화해 편리하게 장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김홍규 내토전통시장 상인회장(60)은 “진분홍색을 시장의 상징 색으로 정하고, 점포 간판마다 상인의 얼굴 사진을 넣는 등 다른 시장과 차별화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할인 쿠폰과 무료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곳에선 1만 원어치를 구매하면 300원짜리 할인 쿠폰을 준다. 쿠폰을 모아서 현금처럼 쓸 수 있고, 주차 요금도 낼 수 있다. 시장 전용 주차장 외에 제천시 공용 주차장에서도 쓸 수 있다. 시장에서 2만 원어치 이상 구매하면 제천 시내 어디든지 무료로 배송해 준다. ○ 시장의 자생력은 매출에서 나온다
시장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인정받아 내토시장은 2013년 우수 전통시장 대통령상을 받았다. 지난해 7월 중소기업청과 제천시가 함께하는 골목형 시장 육성 사업에도 선정됐다. 하지만 상인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각종 지원을 통해 사업들을 꾸려 왔다. 이제 도움 없이 시장 스스로 이를 이어나가는 ‘홀로서기’라는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골목형 시장 육성 사업도 올 6월에 종료됐다.
시장이 살아남기 위해선 젊은층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 상인들의 생각이다. 문화배움터를 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젊은 주부들이 강좌를 들으러 시장에 오면 그 김에 물건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배움터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강사로 참여해 문화강좌를 진행한다. 퀼트, 가죽공예, 생활도자기 제작 등 실생활 맞춤형 강좌들은 30, 40대 젊은 주부들을 타깃으로 했다. 우쿨렐레, 통기타, 생활 댄스 등도 배울 수 있다.
김정문 내토전통시장 상인회 고문(58)은 “시장이 자생력을 갖추려면 매출로 이어질 수 있는 사업이 필요하다”며 “단순히 시장을 알리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시장에서 물건을 사도록 만드는 전략으로 자생력을 키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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