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 차를 몰고 가야할 곳은 외로운 휴게소인지도 모른다. ―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통·이레·2004)
세상 모든 일엔 기술이 필요하다. 심지어 숨쉬는 법, 밥 먹는 법에도 기술을 따지는 시대이다. 하지만 적당한 기술을 배울 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6년 전 첫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찾은 서점에서 눈에 띈 이 책을 지체 없이 집어든 이유다.
책은 기대와 사뭇 달랐다. ‘항공권 싸게 끊는 법’ ‘부피 작게 짐 싸는 법’ ‘게스트하우스에서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법’ 등은 없었다. 대신 작가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글을 통해 목적지를 정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는 법을 소개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목적지 정하기였다. 책 속에서 작가는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통해 외로울 때 새벽의 휴게소가 훌륭한 여행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아무도 없는 식당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여성이 담긴 그림과 해질 녘 국도의 작은 주유소를 외로이 지키는 주인을 묘사한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과 위안을 느끼게 해준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와 단둘이 차를 타고 새벽 고속도로를 달린 일이 있다. 엔진 소리와 뒤섞인 피곤함과 쓸쓸함이 차 안을 메웠다. 항상 가족 넷이 타 왁자하던 차 안에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데서 느끼는 적막감과 외로움도 컸다. 차창 밖의 어둠은 두려움까지 느끼게 했다. 그러다 동틀 무렵 들른 휴게소에서 쉬고 있던 사람들을 발견했을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편안함과 안도감이 느껴졌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통해서 다시 느꼈던 그 감정들이다. 그래서 여행은 새로운 곳을 보고 체험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혹자는 이 책이 누구나 알 만한 얘기를 예술가의 작품과 철학가의 말을 빌려 그럴싸하게 포장했다고 폄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적어도 ‘여행의 기술이란 게 사실 별 것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조용한 새벽에 우연히 들른 편의점에서 좋은 여행지라고 여길 수 있는 것. 그만큼 대단한 기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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