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는 배당 압력… “외국인 배불리고 기업투자 막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7일 03시 00분


3년 한시 ‘사내유보금 과세’ 도입… 올 상장사 배당률 1.8%까지 늘듯
“가계소득 증대 효과 없어” 지적에 “외국인 투자 유인위해 필요” 반론도

 “올해 현금 유보율이 높아졌는데 딱히 투자처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일단 배당을 늘리기로 선택했습니다.”

 국내 유통 분야 대기업 A사의 기업설명(IR) 담당자는 회사를 방문한 애널리스트에게 이 같이 말했다. “지난해 도입된 ‘기업소득 환류세제(사내유보금 과세)’ 탓에 배당을 늘리지 않으면 법인세를 추가로 내야 할 상황에 처해 고민하다 내린 결정”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처럼 4분기(10∼12월)에 접어들면서 배당을 확대하려는 12월 결산기업이 늘고 있다. 지난해 도입된 가계소득 증대를 위한 ‘세제 3대 패키지’의 하나인 기업소득 환류세제의 여파다. 하지만 기업들의 배당 확대가 정부의 기대대로 내수 진작에 기여하지 못하는 데다 외국 투자자들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임금이나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추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 기업 배당, “가계 소비 진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기업이 이익을 쌓아 두지 말고 투자나 임금 증대, 배당에 쓰도록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투자와 임금 증대, 배당 규모가 당기순이익의 80%에 미달되면 해당 금액의 10%를 법인세로 내도록 하고 있다. 제도 시행 이후 2015년 국내 상장사들의 배당률은 1.6%로 이전보다 높아졌다. 이들의 배당률은 2011년 이후 1% 초반에 불과했다.

 증권가에선 올해 국내 상장사들의 배당률이 1.8% 수준까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염동찬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공제 항목(투자, 임금 증대, 배당)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이 세금 부담을 줄이려고 배당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처럼 늘어나는 배당금이 정부의 기대대로 가계 소득 증대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16일 “가계 평균 소비성향(소비 지출÷가처분소득)은 기업소득 환류세제가 도입된 2015년 오히려 전년 대비 1%포인트 줄었다”며 “소비 진작 효과가 없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성급한 배당 확대가 외국인 투자자의 배만 부르게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배덕광 새누리당 의원은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가 최근 5년간 외국인 주주에게 지급한 배당금이 2조3942억 원으로 같은 기간 지급된 전체 배당금의 절반 수준(48%)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내수 진작을 기대하며 유도한 기업배당이 우량 대기업 지분을 대량으로 보유한 외국인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 “손쉬운 배당 늘리고 임금 인상·투자는 외면”

 기업들이 임금 인상이나 투자보다는 상대적으로 결정이 쉬운 배당만 늘려 눈앞에 닥친 세금 문제를 피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2015년 상장사의 배당 금액은 전년 대비 32.1%(4조5000억 원) 늘어났지만 같은 기간 임금은 9.5%(2조9000억 원), 투자는 8.5%(5조8000억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홍성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재정금융팀장은 “경기 불확실성으로 투자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경영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는 임금을 올리는 게 부담스러운 기업들이 배당으로 돌아선 결과”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의 배당 성향이 아직 선진국 기업에 비해 낮아 배당을 더 늘려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 상장사들의 지난해 배당률은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 지수 편입 주요 21개국 가운데 20위로 여전히 꼴찌 수준이다. 영국(4.0%) 프랑스(3.6%) 일본(2.3%) 미국(2.1%) 등 선진국은 물론 대만(3.8%)도 한국보다 배당률이 높다.

 박성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이 외국인들의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앞으로 배당성향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경제계와 학계 관계자들은 “배당은 경제 논리에 따라 개별 기업이 결정할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홍 교수는 “기업이 배당이나 투자, 임금 증대를 하지 않으면 세금 페널티가 있다는 것은 해외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정책”이라며 “정책으로 강요하기보다 기업과 주주가치를 동시에 올리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정연 기자 pres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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