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아일보와 채널A가 주최한 ‘2016 리스타트 잡페어―일하니 행복해요’와 관련해 사전 기획기사 취재차 직장인 민인숙 씨(40)를 만났다. 자녀 둘을 키우려고 일을 그만뒀다가 2년 전부터 시간선택제 형태의 정규직 사원으로 다시 취직한 과정을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에 다니는 그녀를 지칭하는 단어는 ‘워킹 맘’ 외에 꽤 많았다. 리턴맘, 재취업자, 시간선택제 근로자, 그리고 ‘경단녀’(경력단절여성)다.
민 씨는 이 중 가장 마음에 안 드는 표현으로 경단녀를 꼽았다. 입사 초기에 ‘경단녀는 육아 때문에 회사 일에 전념할 수 없다’는 주변의 편견과 싸우느라 강박적으로 근무 태도에 신경 썼다고 한다. “경력이 단절됐다는 낙인이 찍히는 느낌이에요. ‘단절’이라는 표현에 스스로 갇혀서 빨리 정상적인 커리어로 돌아가야겠다는 압박을 한동안 많이 느꼈어요. 경단녀라는 말이 없었더라면 복귀 후 직장에 적응하는 게 좀 더 자연스러웠을지도 몰라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9, 20일 열린 리스타트 행사 채용 부스를 찾은 이들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어 전업주부로 전향한 이들의 반응은 민 씨와 비슷했다. 윤지민 씨(41)는 “가뜩이나 집에만 있어서 세상과 단절된 느낌 때문에 괴로운데 경단녀라고 부르면 더 위축되는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을 지칭하기 위해 편의상 사용해왔던 경단녀라는 단어가 당사자들에게는 일종의 ‘언어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누군가가 나를 지칭하는 말 속에 ‘단절’이라는 부정적 어휘가 들어가 있다고 가정해보면 대충 그 심정이 짐작이 간다. 말은 만들기 나름이라 오랫동안 승진을 못 했다면 ‘승단녀’ ‘승단남’, 한동안 연애를 못했다면 ‘연단녀’ ‘연단남’이 된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할지라도 주변에서 그렇게 프레임을 짜고 들어오면 그 틀에 갇히기 쉽다.
이 표현은 여성을 특정 부류로 나눠 지칭하기 좋아하는 우리 사회의 습성도 담고 있다. 경력이 끊어졌다가 다시 일하는 남성을 두고 ‘경단남’이란 말은 쓰지 않는다. 유독 여성을 강조하는 이런 줄임말, 신조어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를 부리는 일부 여성을 ‘된장녀’로 부르기 시작해 ‘간장녀’ ‘김치녀’ 등으로 이어진 각종 ‘○○녀’ 표현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경단녀라는 차별적인 말로 통칭되고 있는 인구는 기혼 여성 5명 중 1명꼴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4월 기준 15∼54세 기혼 여성 중 직장을 가졌다가 경제활동을 그만둔 인구는 205만3000명으로 전체(942만 명)의 21.8%나 된다. 임신, 출산을 이유로 회사를 그만둔 경우가 다수다. 어머니, 아내 역할을 더 잘하려고 직장을 그만둔 여성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에는 이토록 배려가 부족하다.
앞서 소개한 민 씨를 지칭하는 말이 하나 더 있다. 민 씨의 직장에서는 출산, 육아 문제로 잠시 직장을 그만뒀다가 다시 취업한 이들을 가리켜 ‘해피사원’이라 부른다. 정시 출퇴근하는 일반 사원들보다 3시간가량 적게 일하는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주로 지칭하는 말이다. 민 씨 회사의 관계자는 “일과 가정을 양립하며 ‘해피’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렇게 부른다”고 했다. 편의상 많이 쓰는 경단녀라는 단어가 더 일반화되기 전에 그들이 ‘해피’할 수 있는 긍정적 단어를 다 같이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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