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어느 철도 하청 근로자의 죽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31일 03시 00분


박용 경제부 차장
박용 경제부 차장
 경주 지진으로 어수선했던 13일 새벽 경북 김천구미역 인근 KTX 선로에서 비극이 일어났다. 보수 작업을 위해 KTX 선로에 들어선 코레일 하청회사 직원 2명이 지진으로 지연 운행된 KTX 열차에 치여 숨을 거뒀다. 캄캄한 새벽 철로에서 일어난 참담한 사고는 잇단 여진과 수많은 사건사고 속에 묻혔다.

 사고 열흘 뒤 경찰 조사에서 몰랐던 사실이 드러났다. 숨진 직원 2명이 가로 2.5m, 세로 3m의 작업용 수레(트롤리)를 먼저 선로 밖으로 밀어내느라 시간을 지체하다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작업자들이 수레를 밀어내지 않고 세월호 선원들처럼 나 먼저 살자고 모두 내뺐다면 승객 300여 명이 탄 KTX 열차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끔찍하다.

 목숨을 던져 많은 승객의 생명을 구했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못했다. 사고 원인을 두고 하청회사 측은 “코레일 측의 진입 허가를 받고 선로에 들어갔다”고 주장하고, 코레일 측은 “진입을 허가한 적이 없다”고 맞서면서 의로운 죽음이 제대로 평가조차 받지 못한 채 잊혀지고 있다.

 어느 쪽이 선로 진입을 명령했든, 시키는 대로 캄캄한 선로에 들어선 현장 근로자들에게 잘못은 없어 보인다. 절체절명의 순간 수레부터 밀어냈던 의로운 희생정신이 변색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코레일이 책임 공방부터 벌이는 건 무책임하다. 숨진 이들이 든든한 노조의 지원을 받는 코레일 정규직 직원이었다면 이렇게 푸대접을 했을까.

 한국에선 비슷한 일을 해도 정규직, 비정규직이나 원청, 하청회사로 신분과 소속이 갈리면 대우가 크게 달라진다. 1, 2, 3차 협력회사로 내려갈수록 급여와 처우가 곤두박질친다. 2015년 기준 시간당 임금(대기업 정규직 100 기준)은 중소기업 정규직이 49.7,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5.0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을 놔둔 채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라도 취직하라는 어른들의 얘기가 청년들의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이 규제개혁을 가속화해 생산성을 높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낮추는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한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코레일의 성과연봉제 도입 방침에 반대하며 지난달 27일부터 최장 파업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철도노조는 27일 성명을 내고 노조는 “김천역 고속선 외주노동자들의 죽음 등 외주화의 안전문제와 청년실업의 문제는 안중에도 없다”며 사고 책임을 경영진에 돌렸다. 한데 이걸로는 부족하다. 힘 센 대기업과 공공기관 노조의 협력 없이는 ‘갑’과 ‘을’로 갈린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공고한 벽은 허물어지기 어렵다. 업무를 외부에 맡기지 않는다고 해서 안전사고가 싹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이번처럼 관리 감독과 업무 소통이 서툴면 누가 업무를 맡아도 사고는 재발된다.

 철도노조가 직원과 승객의 안전을 진심으로 중시한다면 성과연봉제 파업 대신 안전을 철저히 챙기는 직원이 더 높은 보상을 받게 성과연봉제를 설계해 달라고 사측에 먼저 요구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청년실업이 그렇게 걱정이라면 ‘신분이 아닌 능력과 생산성에 따른 보상체계를 도입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하고 청년들이 갈 만한 일자리를 늘려 보자’고 성숙한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철도 하청 근로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누구도 외면해선 안 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철도#하청#근로자#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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