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들을 몰아내고 팡팡 소리 나게 베개를 두드려 모양을 잡고 향수를 꺼내 방 구석구석에 뿌렸다. 그러고는 용감하게 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섰다. ―‘대한민국이 답하지 않거든, 세상이 답하게 하라’(김은미·위즈덤하우스·2015년)
스물한 살 가을, 공부하러 기자가 북유럽에 갔을 때 스톡홀름의 밤은 캄캄하고 시렸다. 몸뚱이만 한 캐리어 두 개를 끌고 내 몫으로 배정된 기숙사 방문을 열자 건조한 냉기가 훅 끼쳐 왔다. 한쪽에 덩그러니 놓인 철제 침대에 다행히도 누군가 놓고 간 매트리스가 있었다. 터질 듯한 캐리어를 풀고 패딩 점퍼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입고 하나는 덮고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그제야 ‘혼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매트리스 저 먼 아래로 끝없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첫날밤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낯선 곳에서의 첫날밤은 언제나 서글픈 듯하다. 든든한 기반도, 익숙한 이들도 없는 텅 빈 곳에서 혼자 새로운 일상을 쌓아 나가야 하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글로벌 서비스드 오피스(Serviced Office) 기업 최고경영자(CEO)인 김은미 대표(54·여)의 이야기도 어김없이 그런 서글픈 첫날밤에서 시작한다. 마음 한쪽에서 식지 않는 ‘다르게 살고자 하는 열정’이 20대의 그를 낯선 땅으로 충동질한다. 그렇게 시작한 호주 생활에서 그를 처음 맞은 골방은 바퀴벌레와 개미의 천국이었다. 유학을 마치고 어찌어찌 들어간 현지 회사에서 태국 지사로 갔을 땐 그보다 더 처참한 낡은 숙소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책에 나오는 김 대표의 성공 스토리는 물론 드라마처럼 역경의 연속이다. 실제 그가 겪은 것들은 종이 위의 이야기보다 훨씬 더 골이 깊고 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잔상이 남았던 장면은 그가 텅 빈 방을 처음 정돈하고 향수를 뿌리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가 ‘용감하게’ 골목으로 나서는 부분이었다. 낯선 냄새와 소리와 풍경으로 인해 의식마저 흐릿했던, 기자의 오래된 개인적 기억을 되살려 줬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살아야 할 곳, 승부를 걸어야 할 곳이므로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김 대표는 썼다. 공부든 사업이든 여행이든, 해외에 나가 오늘도 외로운 밤을 맞고 있는 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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