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물루스는 사비니족을 동맹자로 받아들이면서 명실상부한 로마의 주인이 됐다. 그는 정복욕과 투지가 넘치는 타고난 전사였지만 로마의 지도가가 된 후에는 마법사의 지팡이처럼 끝이 구부러진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사람들은 그를 장군이나 대장이 아니라 예언자로 대우했다. 예언자와 지팡이는 정복자의 이미지에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리더가 조직과 구성원을 미래로 이끄는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로물루스의 예언자 행세도 이해할 법하다. 어떤 방식으로 예언의 권위를 얻든 결국 미래라는 동굴 속으로 구성원을 데리고 갈 수 있어야 리더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거대한 제국을 일군 영웅들의 리더십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영웅과 제국’ 코너를 연재하고 있다. DBR 212호에 실린 고대 로마의 창건자 로물루스의 사례가 현대 경영자들에게 주는 교훈을 요약해 소개한다.
○ 불안한 리더십
예언자를 연상시키는 지팡이를 들고 로마 팔라티노 언덕을 어슬렁거리면서 장년의 로물루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형제 같았던 레무스와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레무스의 죽음을 초래한 권력 다툼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되씹었을까.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로물루스의 땅에는 정착 경로가 다른 세 개의 부족이 있었다. 각 부족에는 혈연과 지연이 섞여 있는 ‘형제단’과 같은 10개 이상의 공동체가 있었으며 주민들은 어떤 형식이든 거주지역과 종족, 지위를 서로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를 하고 다녔다. 그것은 아직 이 세계가 섞이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로물루스는 불안했다. 언덕 밖의 세계는 정복과 약탈이 더욱 왕성해지고 있었다. 눈 아래 보이는 세계는 자신의 지배를 받고는 있지만 허술하고 불안했다. 지배에는 명령에 의한 지배와 협박에 의한 지배 두 종류가 있다. 명령에 의한 지배는 명령에 복종하고, 지배자를 자신의 리더로 인정하는 영역이다. 협박에 의한 지배는 상대의 무력에 대한 두려움에 적당히 굴종하는 단계다. 명령복종자를 단합시키려면 공동의 목표를 제공해야 한다. 협박굴종자에게 충성심을 알게 하려면 자신들의 리더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을 던져줘야 한다.
하지만 그의 땅에 있는 군중은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특히 로마인들이 약탈한 아내들의 ‘아버지와 오빠’들인 사비니족만 봐도 그랬다. 로물루스와 극적인 타협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로물루스에게 복종했다기보다는 공동 통치에 동의한 것뿐이었다. 로물루스가 처한 상황은 고구려의 건국자 주몽이 처했던 상황과 유사하다. 초기 고구려에도 5개의 지배부족이 있었다. 나중에 계루부가 왕위를 독점하지만 그 전에는 계루부와 소노부가 번갈아 왕을 배출했고 신전도 각자 따로 소유하고 있었다. 로물루스의 시대도 이와 같았다. 팔라티노 언덕과 사비니족의 퀴리날레 언덕. 이 두 언덕에서 민회도 제각각 열렸고 사제들도 따로 보유했다.
이렇듯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로물루스는 예언자이자 현명한 재판관의 이미지를 유지했다. 5년간의 공동 통치 기간에 사비니족의 수장인 타티우스와 단 한 번의 의견 충돌도 빚지 않았다. 타티우스가 현명했다면 긴장했어야 했다. 두 마리의 맹수가 다툼 없이 지낸다는 것은 한 마리가 완전히 겁을 먹었거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의미다. 로물루스가 전자일리는 없었다.
○ 보이지 않는 세계로 권력 확장
어느 날 사비니족 사람이 인접 도시에서 온 사절단을 약탈하고 살해했다. 범인들은 타티우스의 친족과 하인이었다. 로물루스가 그들을 처벌하려고 하자 타티우스가 저지했다. 로물루스는 타티우스에게 굴복하는 척하다가 살해당한 사절단의 친척들을 끌어들여 그를 살해했다. 타티우스를 제거함으로써 사비니족은 공동 통치자에서 물러나 협박에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그 후 로물루스는 다시 전사로 변신했다. 로물루스는 테베레 강을 따라 북쪽에 위치한 강변도시인 피데나에를 공격해 함락시켰다. 이어 카메리아를 정복하고 또다시 로마인을 이주시켰다. 로물루스는 식민지를 세울 때 독특하고 잔인한 방법을 사용했는데 정복지의 주민을 죽여 원주민의 수를 이주시킬 로마인 수의 절반 정도로 줄이는 것이다. 뒤늦게 출발한 로마가 맹렬하게 성장하고 그들의 성공이 탁월한 식민도시 운영 능력에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로마의 핵심적 성장 비결에 이런 방식 역시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피데나에나 카메리아 모두 약탈로 이름난 도시였다. 하지만 이 도시의 리더들은 밖을 털어서 안을 채우기에만 바빴다. 동물의 본능 중 하나는 자신의 영역을 만들고, 그 안을 지키는 것이다. 울타리 밖의 세계에 유달리 관심이 많은 동물은 인간이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이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은 소수다.
로물루스는 다른 리더들과 달랐다. 다른 강한 자들이 힘자랑에 여념이 없을 때 울타리 밖의 세계를 바라보며 자신의 세계를 통합하고 확장시킬 방법을 고민했다. 통치에 대한 걱정을 바깥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로 확장시키고 추진 방법을 고민했다. 이것의 그의 가장 큰 강점이었던 것이다.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yhkmyy@hanmail.net 정리=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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