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亞太 수수료 조정 일환” 업계 “中-日 뺀 건 납득 못해”
“한국소비자는 봉” 불매운동 반발… 신뢰 깨지기 전에 해법 내놔야
7일 오전 11시경 서울 중구 소공로 비자코리아 본사 앞. 금융소비자연맹 등 12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한국소비자를 봉으로 아는 비자카드 사용 말자”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 대형 전정가위들을 꺼내든 뒤 비자카드 모형의 팻말들을 진짜 카드 자르듯 잘라 버렸다.
금융 관련 소비자단체들이 이처럼 시위에 나선 이유는 글로벌 카드사 비자(VISA)가 일방적으로 해외 이용 수수료를 인상했기 때문이다. 올해 5월 비자는 8개 국내 카드사를 대상으로 6개 항목의 수수료를 최대 2배까지 인상한다고 밝혔다. 특히 국내 카드사가 발급한 비자카드를 해외에서 결제했을 때 내는 해외 이용 수수료를 내년 1월부터 1.0%에서 1.1%로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해외 이용 수수료가 오르면 소비자 부담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비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에서 수수료 조정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번 인상도 그 일환”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카드사들은 “중국과 일본은 빼고 한국만 수수료를 인상하는 건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여신협회 관계자는 “한국만 올린 건 공정하지 않다. 일방적 통보가 아니라 협상을 먼저 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자는 2009년에도 한국만 해외 이용 수수료를 1.2%로 인상하려다 카드사들의 반발에 부닥쳐 취소한 전력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반복되는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비자카드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비자가 차지하는 점유율이 60%가 넘는 상황에서 국내 카드사들이 비자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KB국민, 롯데, BC 등 8개 국내 카드사들은 올 6월 수수료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비자 미국 본사를 찾아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그런데도 비자가 수수료 인상을 강행하자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달 초엔 비자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카드업계 일각에선 공정위가 나서주길 기대하지만 통상 문제 등으로 비화할 수 있어 간단하지 않다.
카드사들은 비자와의 협상에서 무기력할 수 있어도, 소비자들은 그렇지 않다. 국내 소비자들은 ‘비자 불매 운동’에 나서는 등 잔뜩 뿔이 났다. 비자 측이 수수료 인상에 따른 한국 소비자의 반발까지 예상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신뢰는 한번 무너지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경영의 기본 원리쯤은 비자 측도 알고 있을 것이다. 실망한 한국 소비자들이 다음에는 팻말이 아니라 진짜 카드를 잘라 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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