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가상화폐 활성화 팔 걷었지만…
서울서 결제가능한 업소 딱 2곳
실제 사용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
日선 2500곳서 화폐 대신 이용
“한국에선 비트코인을 많이 안 쓸 것 같아요.”
4일 오후 1시 디지털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을 받는 서울 마포구의 카레 전문점 ‘거북이의 주방’ 계산대 앞. 식당 주인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플리케이션(앱)을 열고 비트코인으로 밥값을 결제하려고 했지만 5번 모두 실패했다. 10여 분이 흐르자 기다리는 다른 손님들의 따가운 시선이 등 뒤로 느껴졌다. 결국 지갑에서 신용카드 한 장을 꺼내 계산했다.
지난달 24일 금융위원회가 비트코인 등 디지털 가상 화폐를 지급 및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2013년 말 인천의 한 빵집이 처음으로 비트코인 결제를 시작한 지 3년 만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받아 주는 상점은 여전히 드물고 결제도 쉽지 않아 갈 길이 멀어 보였다. ○ 멀고 먼 비트코인 결제
비트코인 결제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거북이의 주방’ 계산대 점원에게 “비트코인으로 결제하겠다”고 하자 ‘사장님’부터 찾았다.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앱이 사장님의 스마트폰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 김용구 씨(28)의 설명에 따라 기자의 스마트폰에 깔린 비트코인 지갑 앱을 실행해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금액을 입력했다. 이어 김 씨가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앱을 켜고 ‘받기’ 버튼을 누른 뒤 QR코드(스마트폰용 바코드)를 내밀었다. 이 QR코드를 스캔하면 결제가 끝나야 한다. 하지만 계속 오류가 떴다. 김 씨는 “처음 결제할 때 종종 이런 일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상점을 찾는 일은 더 어려웠다. 온라인의 오픈 백과사전 ‘나무위키’에서 검색한 비트코인 결제 가능 업체 소개 사이트는 접속이 되지 않았다.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전 세계 상점 정보를 모아둔 ‘코인맵’(coinmap.org)에서 서울 시내 카페 및 음식점 12곳을 찾았다.
하지만 이 가게들 중 실제 비트코인을 받는 곳은 2곳뿐이었다. 나머지는 연락이 되지 않거나 아예 비트코인을 모른다고 했다. 비트코인 결제를 포기한 카페 운영자 하모 씨(51)는 “1년간 딱 한 번 비트코인으로 받았다”며 “이용자가 늘면 다시 비트코인을 받겠다”고 말했다.
○ 1년도 안 돼 56.4% 가격 상승
비트코인은 일본에선 이미 화폐 대접을 받고 있다. 일본의 비트코인 결제 매장은 9월 현재 약 2500곳이다. 지난해보다 40% 증가한 것이다. 일본은 올해 5월 법률을 개정해 가상화폐를 지급 수단의 하나로 규정하고 비트코인 거래소 설립을 등록제로 바꿨다. 일본 금융당국은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해 이용자들에게 매기는 소비세 8%를 폐지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국내 금융 당국도 일본의 이런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세계적 추세에 맞게 비트코인을 인정해 달라는 업계의 요구가 있어 관련 문제들을 검토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현황을 파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비트코인 결제 상점이 턱없이 부족하고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어 비트코인이 실생활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 거래소 ‘코빗’의 유영석 대표는 “일반인들은 비트코인 개념 자체를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일반 거래보다 해외 송금 등 B2B(기업 간 거래)에서 활용될 여지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큰 폭으로 출렁거리는 점도 걸림돌이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8일 기준으로 비트코인 가격은 단위당 709.15달러(80만8400원)로 올해 1월(453.37달러)보다 56.4% 상승했다. 금 가격은 이 기간 16.1% 올랐다.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의 부가가치와 쓰임새를 확대하려면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방안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근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금융 서비스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거래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블록체인을 통해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