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환율大戰 예고… 한국 ‘새우등’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1일 03시 00분


[트럼프노믹스/한국경제 갈 길은]<1> 위안화 절상 벼르는 트럼프

 《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대로 미국이 보호무역주의 장벽을 높일 경우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환율 및 통상 문제를 놓고 의도하지 않은 마찰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노믹스의 등장으로 변화할 글로벌 통상환경을 철저히 분석하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트럼프노믹스 시대에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을 분야별로 진단해 본다. 》
 

 “재무장관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공식 지정하게 할 것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환율을 조작하는 나라들은 대가를 치를 것이다.”

 153년 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던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게티즈버그에서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후보는 중국에 ‘환율전쟁 선전포고’를 했다.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춰 자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중국에 강력한 압박을 가하겠다는 신호였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일어날 세기의 환율전쟁 틈바구니에서 애꿎은 한국이 희생양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화살이 겉으로는 중국을 겨누고 있지만 실제로는 소규모 개방경제로 대규모 대미 무역흑자를 내고 있는 한국이 ‘시범 케이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미국이) 당장은 중국을 겨냥하겠지만 중국 옆에 있는 한국도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환율전쟁

 전문가들은 기축통화(국제금융거래에서 기본이 되는 돈으로 미국 달러 등을 의미) 국가인 미국엔 보호무역주의 관철과 관련해 환율 압박만큼 강력한 무기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중국산 제품에 4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대표되는 세계무역 시스템에서 개별 품목의 관세 인상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전체 무역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하지만 환율은 차원이 다르다. 위안화 가치가 오르면 중국산 제품 가격은 오르고 가격 경쟁력은 추락하게 된다.

 게다가 미국은 환율 압박을 위한 수단도 이미 마련했다. 대표적인 것이 올 초 발효된 ‘베닛-해치-카퍼 법안’(BHC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국가에 대해서는 미국 내 조달시장 진입 금지와 해당국에 대한 미국 기업의 투자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연방준비제도(Fed)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루이스 알렉산더 노무라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0일 “트럼프의 정책 가운데 가장 명확한 것은 취임 첫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것이다”며 “트럼프는 그 약속을 지킬 것이다”고 예상했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 불똥이 한국에 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다. 1조2000억 달러(약 1381조 원) 규모의 미국 국채를 무기로 단기적으로 환율을 방어하고 자본 유출을 막을 힘이 있다. 외교 안보 측면에서도 쉽게 건드리기 어렵다. 이는 자칫 미국의 시선이 대미 무역흑자 폭은 크면서 상대적으로 만만한 국가로 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이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 정부가 환율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달 발표한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한국을 ‘관찰대상국’으로 지목했다. 미국은 “한국(정부)은 원화 가치의 절상과 절하를 모두 방어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질서한 시장환경이 발생했을 때만 외환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며 압박하기도 했다.

 정부는 우려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응책 마련을 검토 중이다. 외환당국 고위 관계자는 “한국 외환시장이 시장 논리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미국도 인식하고 있다”며 “다만 환율이 급변동할 때는 신속하게 대응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규모 무역흑자국에 대한 무역제재를 고려할 경우 한국에 대해서도 통화가치 절상 압력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향후 구체화될 트럼프의 경제정책 방향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의 방향과 변동성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고 진단했다.

○ ‘트럼프는 기회’ 조심스러운 전망도

 환율을 비롯한 경제 주요 부문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경제팀 수장들은 일제히 ‘트럼프 기회론’을 꺼내들었다. ‘트럼프 쇼크’로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자 트럼프 당선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인프라 투자 확대, 제조업 부흥 등의 정책 방향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 대선 이후) 단기적으로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성장 친화적 정책에 대한 기대를 금융시장이 반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트럼프 당선인의 보호무역주의는 경기에 영향을 주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성장 친화정책으로 갈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이 같은 모습은 환율 불안 등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게 한미 경제동맹에는 물론이고 국내 경제 주체들의 심리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유 부총리는 “전통적 안보 동맹이자 경제 협력 파트너인 한미 간 경제 관계가 호혜적 관점에서 ‘윈윈’할 수 있도록 정책 대안을 마련하고 다양한 협력 채널을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이상훈 january@donga.com·손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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