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정 혼란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등 예기치 못한 대내외 불안 요인이 겹겹이 쌓이면서 한국은행이 5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 같은 불안 요인이 지속되면 한국 경제의 성장세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했다.
이 총재는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1.25%로 동결한 뒤 기자간담회를 열어 “국내외적으로 예상치 못한 불안 요인이 발생해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며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경제 심리를 위축시키고 금융시장 변동성을 높여 전반적인 성장세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최순실 사태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피했지만 “지난달 이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만한 불확실성이 많아졌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국내 정치 상황 등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정부 부처가 일관성 있는 경제 정책을 추진해갈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트럼프 당선인과 관련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철회,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고율의 관세 부과 등의 공약이 정책으로 실현되면 세계 교역은 물론이고 국내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국제금융시장이 트럼프 당선인의 감세, 재정지출 확대, 인프라 투자 같은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로 단기간에 안정됐다”면서도 “하지만 앞으로 트럼프 정부 출범 전후로 구체적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금융시장이 영향을 받아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수출과 내수가 ‘쌍끌이 부진’에 시달리는 가운데 이처럼 대내외 불확실성이 가중돼 한은이 기존에 내놓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2.8%)를 하향 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이 총재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당초 예상대로 12월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정부가 바뀐다고 통화 정책이나 금리 인상 속도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라면서 “미국이 금리를 인상한다고 우리도 곧바로 금리를 인상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날 금융시장에서도 미국의 12월 금리 인상 가능성과 트럼프의 경기부양 기대감으로 달러화 강세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신흥국 통화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원-달러 환율은 14.2원 급등(원화 가치는 약세)한 1164.8원에 마감해 4개월 만에 1160원대를 넘어섰다. 미국의 국채 금리 급등(채권 가격은 하락)에 따라 국내 국고채 금리도 줄줄이 올랐다.
이 총재는 “최근 시장금리 상승으로 대출금리가 오르면서 취약계층의 가계부채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정부도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관계기관과 대책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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