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지도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중세 군주들은 영토를 명확히 하기 위해 삼각측량법을 이용한 지도로 권력을 표현했다.
오늘날 지도는 항공사진 및 우주로켓을 이용해 해저 지형에서 행성 표면까지 표현이 가능해졌다. 지리정보시스템으로 구축돼 활용되는 현재 지도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데이터, 운영 인력과 이를 적용할 사회 인프라로 구성된다.
최근 구글이 한국 정부에 국외 반출을 요청한 축척 5000분의 1 지도정보는 항공사진으로 작성된 지도가 아니라 지리정보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는 거리나 건물의 위치, 높이, 도로 방향 등이 들어있는 데이터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정밀한 데이터는 개인 위치를 정확히 특정할 수 있어서 개인위치정보로 해석된다.
구글의 지도 데이터 반출 요청을 바라보는 관점은 안보, 개인정보 국외 이전, 국내 산업 보호와 성장, 경쟁 공정성 등 다양하다. 하지만 정부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국민과 국가의 중요한 데이터가 반출될 경우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보호할지에 대한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안보와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데이터 이전을 억제해 왔다. 다른 글로벌 사업자의 경우 데이터 국외 이전이 문제가 되었을 때 국내에 데이터를 거치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을 위해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확보했다. 사업자에게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지만 국내 이용자 보호를 우선시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규제 이행에 대한 실효적 관리와 형사사법권의 확보를 통해 이용자 권익 보호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및 한-유럽연합(EU) FTA에서 금융정보의 국외 이전에 대하여 이전하는 과정 요건을 연구하여 정한다. 이를 바탕으로 금융위원회는 전산설비 위치와 관련한 규정을 개정해 주민등록번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에 대해서는 국외 이전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또 국외 이전이 되더라도 금융 감독과 형사사법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구글의 지도 데이터 반출 요청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도 데이터의 국외 이전에 대하여 구글이 한국 정부의 규제를 따라야 하는 환경을 제공하고 그 시행 여부를 확인하면 될 것이다. 다만 민감한 개인정보에 대해서는 2018년부터 적용되는 EU 단일개인정보보호법(GDPR)을 참고해 구글이 EU에 대하여 적용하는 수준의 이행을 보장하고 국내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위치정보보호법 및 공간정보법에 대한 이행을 보장하면 될 것이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고 단순히 지도 데이터만을 이전하겠다고 하면 시장의 규칙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로 비칠 수 있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서 서비스를 하면서 국내 기업에 적용되는 규제를 이행하지 않고 점검을 회피한다는 볼멘소리가 있어 왔다. 이번 기회에 글로벌 기업들의 규제 이행에 대한 투명성과 합리성을 보여줘 그동안 인식을 일소했으면 한다.
지도는 권력이다. 과거에는 권력자에게 필수적이었고 군사적으로 활용됐으나 이제는 개인정보와 밀접하게 맞닿아 일상생활 속에서 가치를 발현하는 근본적인 플랫폼이 됐다. 이렇게 우리 생활에 밀접한 지도 데이터를 한국 정부가 제대로 관리하고 보호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이용자들이 시장에서 선진 정보통신기술(ICT) 국가의 위상에 걸맞은 서비스를 받게 되기를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