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2월 14일과 15일, 이틀간 파월 한국군은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 성(省) 짜빈동 지역에서 큰 승리를 거뒀다. 300명이 채 안 되는 청룡부대 1개 중대가 월맹군과 베트콩 2400여 명을 격퇴했다. 당시 승리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중대 단위 전술기지’가 꼽힌다. 이 기지는 어느 쪽에서 공격을 받아도 반격이 가능하도록 원형으로 설계됐다. 방어선은 이중으로 구축해 유사시에 외곽 방어부대가 내부 방어선으로 후퇴한 뒤 적에 대항하도록 했다. 방어선의 교통호는 가로 방향 연결을 최소화했다. 세로 방향 교통호는 소대장 또는 분대장의 허락을 받아야만 쓸 수 있게 설계돼 침투해온 적이 쉽게 이용하지 못했다. 또 아군 방어선까지 적군이 침투할 것을 대비해 참호 곳곳에 두꺼운 지붕을 설치했다. 아군 방어선이 뚫릴 위기에 처하면 지붕 밑으로 아군을 숨게 한 뒤 포탄을 쏟아 부어 적군을 격퇴하기 위해서다. 미군이 처음에는 중대 전술기지를 비웃다가 작전 성공이 이어지자 ‘화력거점(Fire Base)’이란 이름을 붙이고 연구에 나섰을 정도다.
중대 전술기지는 그 자체가 전략전술의 실행 장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군은 평소에는 흩어져 있다가 갑자기 뭉쳐 공격하는 적의 작전을 분석한 뒤 방어거점이자 공격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중대 전술기지를 고안했다. 이런 접근 방식은 다른 분야에서도 통용될 수 있다. 주요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 수립에는 반드시 구체적인 실행 계획 수립 과정이 들어간다. ‘늙은 공룡’ GE를 민첩한 맹수로 재탄생시킨 잭 웰치 전 회장은 실행을 ‘강요’하면서 조직문화를 혁신했다. 그는 실무 부서가 문제 해결을 위한 검토 작업부터 해결책 실행에 필요한 비용·자원, 실행에서 예상되는 문제점 및 대응 방안, 실행의 주체와 과업·기한까지 책임지도록 했다. 또 이를 담은 ‘90일 실행계획’을 만들도록 했다. 전략적 미래 예측 분야 전문가 퍼트리샤 러스티그는 자신의 저서 ‘전략적 미래예측: 미래로부터 배운다’에서 “전략수립은 곧 행동과 같은 말이다”라고 여러 차례 반복해 강조했다.
실행 계획을 미리 세우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무엇보다도 실제로 일이 발생했을 때 발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 이것은 특히 경쟁자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엄청난 이점을 제공한다. 또 실행 방안을 고민하다 보면 가끔 여러 가지 상황에 공통으로 적용 가능한 ‘황금열쇠’ 같은 해결책이 드러나기도 한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 이후 한국과 일본 정부의 행보가 크게 차이가 나 우려를 낳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 대선 직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회담을 성사시켰고 재계 전문가들은 향후 미일 간 경제협력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담은 제언을 정부에 전달했다. 우리 정부도 매일 대책회의를 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부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우리도 나름대로 트럼프에 대한 분석을 해 놓았다”고 항변한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한 국책연구기관 보고서는 트럼프 대선캠프의 주요 공약과 예상되는 정책 방향에 대해 심도 깊은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체적 행동 방안은 보이지 않았다. 구슬은 꿰어야 보배이듯 전략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생명을 얻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