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신의 의지로 행동한다는 착각 속에서 산다. 하지만 실제로 현대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많이 착각한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에리히 프롬·나무생각·2016년)
필자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좋아한다. 그의 그림에 끌리는 이유를 다섯 가지 이상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고흐를 좋아하는 것은 정말로 ‘내 생각’일까. 학창 시절 고흐의 그림을 위대한 명작이라 외치던 미술 선생님의 이야기가 내게 스며든 것일 수 있다. 고흐의 그림이 미술계에서 권위를 얻게 된 과정을 우연히 책에서 읽고 체화(體化)한 것일 수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어쩌면 외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1900∼1980)은 이 같은 현상을 ‘익명의 권위에 따라 만들어진 자아’라고 설명한다. 오늘날 익명의 권위는 시장과 여론이다. 남들과 다르지 않고 싶은 소망과 무리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만들어준 권위다. 사람들이 스스로 원하는 자아 대신 사회가 기대하는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도 여기서 출발한다.
‘만들어진 자아’를 만족시키기란 무척 피곤한 일이다.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며 자신을 속여야 하고, 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기 위해 애써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척해야 하고, 외부에서 주어진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착취하는 모순적인 일들을 벌여야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주도적 삶에 대해 남긴 글들을 그의 제자인 라이너 풍크가 엮은 것이다. 저자가 세상을 떠난 지 36년이 지났지만 책의 내용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에리히 프롬이 던지는 해법은 간단하다. 진정한 삶을 찾기 위해 ‘진짜’와 ‘허울’을 가려낼 줄 알고, 무지를 두려워하는 대신 새로운 것에 솔직하게 감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자아’가 이끄는 삶은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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