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어주, 청명주, 호모루덴스…. 아마 한국인에게조차 낯선 술 이름들이라고 생각한다. 작년부터 한국의 문화도 배우고 한국어 실력도 늘릴 겸 친한 친구를 따라서 한국 전통주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각자 짜 온 레시피로 막걸리를 만들거나 새로운 전통주를 마셔 보기 위해 양조장이나 전통주 바를 찾아가는 모임이다.
지난달에 이 모임의 친구들과 함께 애주가 부부가 전국의 유명 막걸리, 청주, 증류주 등 170여 전통주를 엄선하여 판매하고 있는 바를 탐방했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오직 한 종류의 소주와 맥주만 마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임을 시작한 이래로 여러 종류의 전통주와 맥주를 접하게 되면서 한국의 술 문화에 대한 나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들과 함께 경기 파주에서 아황주를 빚고 있는 할머님의 양조장에 찾아가 어떤 식으로 전통주를 만드는지 그 과정을 보았다. 물론 나는 할머님의 말씀이 너무 빠르고 모르는 양조 관련 단어가 많아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열성적으로 설명하시는 할머님의 모습과 눈빛에서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한번은 이 모임의 한 친구가 직접 만든 막걸리 두 병을 독일에 가져간 적이 있다. 나의 어머니께서 그것을 드셔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앞으로는 막걸리 대신 한국에서 유명한 참기름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아마도 안 좋아하는 막걸리보다 요리할 때 유용한 참기름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또 다른 한 병은 친구들에게 맛을 보여 주었다. 소극적으로 드시던 어머니와 달리 친구들은 그 술을 과감하게 들이켜며 “다음에 만들면 또 갖고 와 달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한국 전통주를 가져가고 있는데, 다행히 이번에 가져간 오미자주는 핑크빛에 새콤달콤함이 어머니의 입맛에 잘 맞았는지 참기름을 가져오라는 말씀은 없으셨다.
내가 보기에 막걸리는 전 세계 발효주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보적인 스타일의 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막걸리는 예로부터 가정집에서 쉽게 많이 만들어 마시던 술이었기 때문에 독특한 방법으로 만들어져 그 향과 맛이 다양하다. 새콤달콤한 맛도 있고, 무겁고 텁텁하지만 깔끔한 끝 맛도 있는 여러 막걸리는 골라 마시는 재미까지 있다. 그래서인지 막걸리가 가진 다양한 맛이 마치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한국의 매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한국의 맥주 맛에는 조금 실망했었다. 내 고향 뮌헨에는 맥주를 만드는 곳이 많아서 당연하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대형 제조사 한두 곳의 맥주밖에 마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6년 전 한국으로 유학을 왔을 당시에는 친구들과 서울 홍익대 앞 술집에 자주 갔는데, 우리는 맥주의 종류를 고를 필요도 없이 당연하게 생맥주 3000cc 피처를 주문했었다. 하지만 요즘 서울의 홍익대나 이태원, 강남에 있는 술집을 가면 맥주 메뉴판이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오랜 맥주의 역사를 가진 독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주회사가 많아 다양한 맥주를 선택할 기회가 많을 것 같지만 바이젠, 헬레스, 둥켈 등 서너 가지의 맥주만 만들기 때문에 늘 똑같은 맥주를 마시는 기분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한국처럼 술집에서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를 골라 마시는 일이 거의 없다.
사실 독일에도 소규모로 수제 맥주를 만드는 곳이 있긴 하지만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요즘 서울에서는 수제 맥주를 즐기기가 아주 쉬워졌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맥주가 독일 맥주보다 더 세련되고 글로벌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마 곧 있으면 한국 맥주가 독일보다 더 유명해져서 새로운 ‘맥주의 메카’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만약 나처럼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이나 아직 한국의 술 문화를 제대로 모르는 한국인들이 있다면 시음을 꼭 해보기를 권한다. 한국의 전통주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가 있는지, 아직 안 마셔본 술들을 하나씩 계획해서 마셔보고, 느껴보고, 비교해보는 일들이 작은 즐거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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