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 이상 주요 재정사업 74개… 9월까지 예산집행률 60% 미만
‘돈 풀어 경기부양’ 공수표 될판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보건복지부는 올해 집행될 ‘신종 감염병 대응체계 강화 사업’에 564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컨트롤타워 부재 논란에 휩싸이는 등 초기 대응 실패로 여론의 비판이 쏟아지자 나온 조치였다. 정부는 이 예산으로 질병 위기관리 능력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 9월까지 집행된 예산은 23억 원(4.1%)에 불과하다. 복지부는 “바이러스 백신 구입 관련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지 않아 집행이 11월 이후로 미뤄졌다”고 해명했다.
올 4분기(10∼12월) ‘성장절벽’이 우려되자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10조 원 규모의 재정 보강 대책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선 돈이 돌지 않고 있다. 신종 감염병 대응 사업처럼 계획된 예산마저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재정 집행 카드 효과가 떨어진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16일 기획재정부의 ‘월간재정동향 11월호’에 따르면 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인 중앙부처 주요 관리 대상 사업 454개 중 74개(16.3%)의 9월 말 현재 집행률은 60% 미만이다. 같은 기간 한국전력공사, 한국석유공사 등 28개 공공기관의 69개 사업 중 14개(20.3%)의 집행률도 60%를 밑돈다. 올해 재정 집행은 예년보다 전반적으로 부진하다. 9월 말까지 정부 지출(예산+기금)의 집행률은 75.7%로 지난해보다 1.9%포인트 낮다.
정부의 재정 집행이 부진한 것은 일선 부처들이 예산 확보에만 열을 올릴 뿐 후속 조치에는 소홀한 탓이다. 예산을 편성하는 기재부가 집행을 독려하지만 최근의 국정 공백 때문에 일선에서 눈치만 보는 일도 많아졌다. 대표적인 곳이 국방부다. 올해 국방 예산은 지난해보다 4.0% 늘어 전체 예산 증가율(3.0%)을 웃돌았다. 하지만 9월까지 국방부의 주요 사업 집행률은 61.4%로 17개 정부 부처 중에서 가장 낮다.
● 부처들 예산집행 소홀… 국정공백에 더 눈치만
특히 국방부가 핵심 사업으로 꼽는 군 시설 이전 사업(34.1%)이나 부대 개편 사업(49.5%), 탄약 관리(52.2%) 등의 집행이 지지부진하다.
기업 구조조정과 지방자치단체 반발 등으로 예산 집행이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도로 건설 같은 사회간접자본(SOC)에 상당한 사업 예산을 책정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은 민간 건설사들이 대거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자금 집행이 중단된 상태다.
그 결과 한국도로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등 주요 SOC 투자를 맡고 있는 기관들의 집행률은 60%대 초중반에 그쳤다. 한국가스공사는 인천 연수구가 송도기지 액화천연가스(LNG) 탱크 증설 허가를 잇달아 연기하면서 올해 ‘공급 및 생산설비 건설’에 책정된 예산(9051억 원)의 절반도 쓰지 못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일부 개별 사업의 집행률이 낮지만 연말까지는 정상적으로 진행되도록 추진해갈 계획이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부 설명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공백이 생기면서 각종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12월에 예산 집행이 몰리면 재정 투입을 통해 올해 안에 경기 회복에 시동을 걸겠다는 정부 구상은 물거품이 되는 셈이다.
한 일선 부처 예산 담당자는 “연말에 집행되는 예산 대부분은 서류로만 올해 집행되는 것으로 잡혀 실제로 시중에는 내년에 돈이 풀릴 가능성이 크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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