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發) 인플레이션 우려로 요동치는 국내외 금융시장에 미국의 금리 인상 공포까지 덮쳤다.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2월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하자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서 한국 등 신흥국 통화가 일제히 추락했다. 이에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의 엑소더스(대탈출)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등을 내세운 트럼프노믹스(트럼프의 경제정책)에 대한 우려로 국내 금융시장은 물론이고 실물경제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원-달러 환율 1180원 돌파
옐런 의장은 17일(현지 시간) 미 의회 합동경제위원회 청문회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비교적 이른 시점에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또 “금리를 현 수준에서 너무 오래 유지하면 위험 선호 현상을 부추기고 금융 안전성을 해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 대통령 선거 이후 처음 공식석상에 나선 옐런 의장이 12월 금리 인상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다. 금융시장은 다음 달 13일 열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현재 0.25∼0.50%인 기준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확신하는 분위기다.
옐런 의장의 발언은 최근 트럼프의 경기 부양 기대감으로 상승세를 탄 달러 강세를 부채질했다. 18일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1 선을 돌파해 13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그 여파로 아시아 주요국 통화 가치는 가파르게 떨어졌다. 18일 원-달러 환율은 7.3원 상승(원화 가치 하락)한 1183.2원에 마감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직후인 6월 27일(1182.3원) 이후 약 5개월 만에 처음으로 1180원을 넘어섰다. 국내 국고채 금리도 줄줄이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중국 런민(人民)은행은 이날 위안화 기준 환율을 전날보다 0.15% 올린(위안화 가치 하락) 달러당 6.8495위안에 고시했다. 위안화 가치는 4일부터 이날까지 11거래일 연속 절하돼 달러 대비 총 1.9% 떨어졌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5년 6월 이후 최장기간 절하된 것이다. 엔-달러 환율도 5개월 반 만에 110엔 선을 돌파하며 엔화 약세를 이어갔다. ○ 외국 자본 엑소더스 우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연준이 12월에 이어 내년에 2, 3차례 더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 등 신흥국과 미국 간 금리 격차가 좁혀져 외국인 자금의 미국으로의 ‘유턴’이 가속화하고 신흥국 금융시장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이미 국내 증시에서는 이달 들어 외국인들이 1조7000억 원어치가 넘는 코스피 주식을 순매도하는 등 우려가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이현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이 차익 실현에 나서는 환율이 1150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자금 이탈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이 연내 1200원대까지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트럼프노믹스가 본격화하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등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BNP파리바가 트럼프 당선에 따른 20개 신흥국의 취약성지수를 산출한 결과 한국은 3번째로 취약했다.
한국은행은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되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시장 안정화를 위한 국고채 매입에 나서기로 했다. 한은은 21일 국고채 1조5000억 원어치를 매입한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시장 불안이 확산되면 적시에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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