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영을 위해 대규모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서는 한국 기업이 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미국의 오디오 및 자동차용 전자장치 제조업체인 하만을 80억 달러(약 9조3600억 원)에 인수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기업의 해외 업체 인수에 대해 기대와 희망을 가진 사람도 많지만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 본사에서 파견된 경영진 혹은 이사진이 개성 강한 외국인 임직원들을 한국식으로 밀어붙이면 M&A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11월호에 실린 사례는 한국 경영자들에게 적지 않은 교훈을 준다. HBR는 미국인으로서 독일 기업 SAP를 지휘하고 있는 빌 맥더멋의 이야기를 통해 글로벌 경영자의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 SAP는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로 독일 남부의 소도시 발도르프에 본사가 있다. 2015년 매출액이 208억 유로(약 26조 원), 전 세계 직원이 8만3000여 명에 달한다. 맥더멋은 이 회사 45년 역사상 첫 미국인 최고경영자(CEO)다.
맥더멋은 어려서부터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이 이문화(異文化) 적응에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8세가 될 때까지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었지만 신문배달, 주유소, 식료품점 점원 등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배웠다.
맥더멋은 어느 나라든 ‘겸손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 갔을 때는 본인의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우선 현지 직원들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청년 시절 복사기 회사 제록스에서 푸에르토리코 지사장으로 파견됐을 때의 일이다. 패배감에 젖은 현지 직원들은 성격이 강한 미국인이 느닷없이 등장해서 자신의 요구사항을 강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맥더멋은 첫 2주간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비서에게 스페인어 주요 문장들을 배워가며 팀원들과 소통하려 노력했다. 직원들의 사기가 올라가자 지사의 실적도 좋아졌다.
그는 SAP의 북미사업부 지사장으로 일하면서 독일과 미국의 문화 차이도 감지했다. 미국인은 쉽게 흥분하고 감정적이며 에너지가 넘친다. 반면 독일인들은 마치 법정에 선 것처럼 원리 원칙대로, 사실 위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이번 분기에 매출을 30% 성장시키겠다’는 발표를 하면 시작부터 박수갈채를 받겠지만, 독일에서라면 우선 사업이 처할 수 있는 여러 위기 상황부터 설명한 후에 매출 성장 계획을 얘기해야 한다. 그는 이런 미묘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해야 다국적 기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맥더멋은 해외에 있는 기업을 경영할 때 경영자가 가족과 함께 현지로 이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직원들에게 자신이 현지 문화의 한 부분이 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스스로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해외 기업을 경영할 때는 현지에서 항상 겸손하고 인간적으로 행동하되, 자신에게 당당하고 직원들에게 확고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긍정의 힘은 어느 나라에서든 통하는 자극제이기 때문이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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