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25 가계부채 대책’ 이후 석 달 만에 그동안 규제에서 빠졌던 아파트 집단대출에 강력한 메스를 들이댔지만 한발 늦은 ‘뒷북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11년부터 올해 3분기(7∼9월)까지 모두 8차례의 가계부채 대책이 쏟아졌지만 가계 빚 증가세를 잡기는커녕 부채의 양적, 질적 악화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높다. 이 기간 850조 원을 밑돌던 가계부채는 지난달 1300조 원대의 시한폭탄으로 커졌다.
최근 국내 대출 금리 급등세와 맞물려 자영업자, 은퇴가구, 다중채무자 등 3대 취약계층의 부채는 부실의 ‘뇌관’으로 떠오른 모양새다. 향후 금리 상승이 본격화하면 충격이 이들 취약계층뿐만 아니라 금융권 전체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반복된 미봉책, 가계부채 위험 키웠다
정부는 2011년부터 가계부채와 관련해 “경기가 경착륙하지 않도록 미세 조정한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그 결과 은행권을 틀어막으면 제2금융권으로 부채가 옮겨가고, 제2금융권을 조이면 은행권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반복됐다.
주택담보대출이 대표적이다. 2011년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고위험 주택대출을 제한했다. 그러자 제2금융권 대출이 급증했다. 이에 정부는 이듬해 상호금융권의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 비율)을 80%로 제한하는 대책을 내놨다.
2014년 들어 상호금융권 대출이 10% 이상 급증하자 금융당국은 상호금융권 기준을 낮추고 은행권을 높이는 식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상한선을 70%로 일원화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상호금융권을 찾았던 대출자들이 은행권으로 몰렸다. 결국 정부는 올해 은행권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했다.
이후 제2금융권 대출이 사상 최대 규모의 급증세를 이어가자 정부는 이달 24일 상호금융권에도 가이드라인을 적용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정부가 소득 대비 부채가 아닌 가계부채 총량을 관리하려다 보니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며 “은행에서 제2금융권으로 밀려난 대출자는 더 비싼 이자만 부담해야 하는 악영향만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재탕 대책도 있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상호금융권 비(非)주택담보대출에 대해 담보인정한도를 60∼80%에서 50∼80%로 낮췄다. 그런데도 증가세가 잡히지 않자 올해 8월 한도를 또다시 40∼70%로 낮췄다.
24일 집단대출에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한 것에 대해서는 뒤늦은 대책이라는 지적이 많다. 집단대출 급증세가 지난해 하반기(7∼12월)부터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1년이나 뒤늦게 대책이 마련된 셈이다.
○ 취약계층 3대 뇌관, 우선 터질 것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대출 채널을 하나하나 막아가며 돈을 빌리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지 의문스럽다”며 “대출로 생계를 이어가는 취약계층의 부채 질이 더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취약계층 중에서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을 우려가 높다. 대부분 경기에 민감한 임대업 도소매 숙박 음식점 등에 밀집해 있고, 부채 상당 부분이 제2금융권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말 은행권의 자영업자(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258조1000억 원으로 올 들어서만 20조 원 가까이 급증했다. 자영업자 대출은 통계상 중소기업 대출로 분류되지만 자영업자의 생계자금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숨어 있는 가계부채’로 꼽힌다.
은퇴가구도 부실 위험이 커지고 있다. 한국신용정보원에 따르면 대출연체 발생률은 65세부터 반등했다. 특히 노후 자금이나 생활비 용도로 1000만 원 이하 소액대출을 받은 노년층이 연체 위험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중채무자도 부채 뇌관으로 꼽힌다. 전체 가계대출 중 금융사 3곳 이상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 비중은 올 6월 20%를 넘어섰다. 이들의 1인당 대출액 평균은 6월 말 현재 1억910만 원으로 비다중채무자(6280만 원)의 2배에 육박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정부는 성장률을 통해 경제성적표를 관리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가계부채 관리에 대한 우선순위를 위험 요소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