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가동률 70% ‘허덕’… 실업률도 16년만에 최악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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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경기 ‘외환위기 수준’]

《 지난달 29일 오후 6시경 울산 동구 서부동의 명덕시장. 돼지불고기를 파는 식당에선 테이블 9개 중 한 테이블에서만 손님 4명이 삼겹살을 구우며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 식당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10명 이상이 회식을 하려면 2, 3일 전에 예약해야 하는 곳이었다. 식당 주인은 “현대중공업이 구조조정에 들어가기 시작한 2, 3년 전부터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하다 1년 전부터는 손님이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완공 전에 입주 경쟁이 불붙었던 인근 원룸촌에는 ‘급(急)임대’라는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

○ 구조조정 직격탄 맞은 제조업


 
정부 당국은 지금의 경제 상황은 기업과 종합금융사(종금사) 등 금융회사가 단기외채를 대거 들여와 중장기 대출이나 시설자금으로 쓰는 바람에 외화 수급에 문제가 생겼던 1997년과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산업현장에선 실물경기만 놓고 봤을 때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사정이 어렵다고 호소한다.

 산업계에서는 현재 위기의 핵심이 ‘흔들리는 제조업’에 있다고 본다. 그간 한국 경제를 이끌어 왔던 제조업은 최근의 경기 침체와 구조조정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자체 구조조정에 들어간 철강 업계에서는 유휴 설비를 처분하려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현대제철은 인천공장의 단조용 제강설비 폐쇄를 공식화하면서 매각을 추진 중이다. 포스코는 경북 포항시와 전남 광양시에 있는 후판공장 4개 중 1개 라인의 가동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최근 태풍과 파업으로 몸살을 앓았다. 7∼9월 총 24차례 파업을 겪었던 현대자동차는 10월 들어선 파업이 없었다. 하지만 태풍이 발목을 잡았다. 현대차 울산2공장은 10월 초 18호 태풍 ‘차바’로 침수 피해를 봐 엿새간 가동이 중단됐다. 현대차보다 상대적으로 노사 협상 타결이 늦었던 기아자동차는 10월 6차례 부분파업으로 생산 차질을 빚었다.

 매년 연말 ‘단비’를 내려주던 12월 특수는 ‘최순실 게이트’와 ‘세계적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대내외 악재들로 인해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재계는 6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대기업 총수 9명이 한꺼번에 불려 나가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경기가 살아나려면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개선되어야 하는데 불확실성 증대로 소비와 기업 심리가 모두 꽁꽁 얼어붙었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기업 환경을 위축시키는 작은 요소도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기업·가계부채 ‘위기의 뇌관’

 정부는 몇몇 경제지표가 나빠지고 있지만 37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과 20%대의 낮은 단기외채 비중, 금융회사의 건전성 등을 근거로 경제 펀더멘털이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좋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상황이 급박하다는 지적이 많다. 외환위기 때는 삼보·기아 등 대기업에 연쇄 부도를 일으킨 과도한 기업부채가 뇌관이 됐다. 지금은 기업부채 상황이 그때보다 낫지만 기업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해 언제라도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여파로 내년 실업률이 16년 만에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내년 실업률은 3.9%로 올해(3.7%)보다 0.2%포인트 높아져 외환위기 후인 2001년(4.0%) 이후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고용률 역시 60.5%로 올해보다 0.1%포인트 오르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더 큰 문제는 1300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다. 대내외 악재에 금융권이 위기감을 느껴 대출 회수에 나설 경우 신용경색이 발생해 경기가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주택 가격 하락과 기업 부실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전염병 뱅크런’이 발생해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 상황이 위태롭지만 위기를 돌파할 리더십은 장기 실종 상태다. 대통령 퇴진이 가시화된 가운데 경제부총리 청문회는 말도 꺼내기 어려워졌다. 아직 물러나지 않은 현직 부총리와 후보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지금의 기형적 체제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획재정부는 2일 예산안 처리가 끝나면 곧장 내년 경제정책 및 업무보고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예산안 처리 직후인 6일부터는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가 예고돼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위기가 외환수급 불균형에 따른 일시적인 충격이었다면 지금의 위기는 제조업 구조조정 부진과 경쟁력 하락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물경제를 꿰뚫는 사람을 경제사령탑으로 앉히고 민관이 협력해서 뒷받침해야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 /울산=정재락 /김창덕 기자
#구조조정#제조업#실업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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