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 출신 스무 살 청년이 금성사(현 LG전자)에 견습생으로 들어와 40년 만에 연간 매출액 50조 원이 넘는 글로벌 기업의 1인자 자리에 올랐다. 1일 발표된 LG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국내 10대 기업(공정거래위원회 기준) 임원 중 고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부회장으로 승진해 최고경영자(CEO)에까지 오른 조성진 LG전자 부회장(60) 얘기다.
LG전자는 이날 내놓은 2017년도 임원인사 및 조직개편 방안을 통해 기존 3인 공동대표 체제를 1인 CEO 체제로 바꾼다고 밝혔다. 이로써 H&A사업본부장(사장)으로 LG전자 가전사업만 책임지던 조 부회장은 휴대전화 부문 등 LG전자 전체 사업을 이끌게 됐다. ‘흙수저 논쟁’이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조 부회장이 이룬 ‘고졸 출신 샐러리맨의 신화’가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 노력하면 학벌에 관계없이
1976년 서울 용산공고를 졸업하고 금성사에서 견습과정을 거쳐 우수 장학생 자격으로 입사한 조 부회장은 사내에서 ‘노력형 리더’로 불린다. 금성사 세탁기 설계실에 들어왔을 당시 국내 세탁기 보급률은 0.1%에 불과했다. 조 부회장은 10여 년 동안 150차례 일본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밑바닥부터 기술을 배웠다. 회사에는 침대와 주방 시설까지 마련해 밤샘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때 생긴 ‘세탁기 장인’이라는 별명은 아직도 조 부회장을 소개할 때 쓰인다.
조 부회장은 입사 후 야간 대학을 1년 정도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 일과 공부를 양립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일을 선택했다. 조 부회장은 “학력을 높이기보다 일을 먼저 완성도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제품 개발하는 쪽에 전력을 다했다”며 “지나고 보니 학력은 사람 능력치의 20%도 안 된다고 느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후 조 부회장이 개발을 이끈 세탁기 ‘다이렉트 드라이브 모터’는 지금까지 미국 세탁기 시장의 주류를 전자동에서 드럼으로 바꾼 계기가 됐다고 평가받는다.
말투에도 조 부회장의 노력은 고스란히 묻어난다. 충남 보령 출신이지만 말투에는 일본식 억양과 LG전자 공장이 있는 경남 창원 사투리가 묻어 있다. 1980년대 일본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 특산품을 싸들고 일본 기업을 낮밤으로 찾아다닌 경험, 2014년 H&A사업본부장 부임 후 일주일 중 절반은 창원공장에서 임직원들과 현장을 챙기면서 생긴 습관이다.
○ 가전 1등 DNA를 스마트폰·자동차부품에도
40년 직장생활 중 우여곡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조 부회장이 2014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 가전 박람회(IFA) 중에 경쟁사인 삼성전자 세탁기를 파손한 혐의로 기소돼 출국금지까지 당했던 에피소드도 유명한 얘깃거리다. 이 사건은 지난달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세탁기 메인 부품을 국산화하고 싶어 개발을 시작했지만 투자비 문제로 상급자와 갈등을 빚어 일주일 동안 책상을 들고 옥상에 올라가 연구했던 적도 있었다. 조 부회장은 수준급 색소폰 연주 실력을 갖췄다. 해외 바이어와 미팅할 때는 직접 색소폰을 연주하기도 한다.
조 부회장은 내년 1월 1일부터 LG전자 CEO로서 가전제품뿐 아니라 자동차부품을 담당하는 VC사업본부, 스마트폰 사업을 벌이는 MC사업본부 등을 이끌게 됐다. 최근 프리미엄 브랜드 LG 시그니처, 빌트인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를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1등 DNA’를 다른 사업에서도 발휘하길 바라는 회사 안팎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조 부회장은 LG 세탁기를 세계 1등으로 만든 뚝심과 인간적이고 편안한 리더라는 점이 이번 인사에서 높이 평가받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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