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금융감독원이 자살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빅3’ 생명보험사와 알리안츠생명에 영업권 반납과 대표 해임 권고까지 포함한 중징계를 예고했습니다. 금융 당국의 압박에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버티던 알리안츠생명이 5일 “모두 지급하겠다”며 손을 들었습니다. 보험업계에서는 나머지 빅3 생보사들도 최종 제재가 확정되기 전에 당국에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일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보험사들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근거로 대법원의 판결을 꼽습니다. 올 9월 대법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소송에서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보험사들은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보험금을 지급하면 주주로부터 배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보험금을 지급할 경우 자살을 방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올 2월 현재 생보사 14곳에서 지급하지 않은 자살보험금(재해사망 특약)은 2465억 원 규모입니다.
자살보험금 논란은 뿌리가 깊습니다. 업계에선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문제의 재해사망특약이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표준약관인 일반사망보험 약관의 지급면제 조항에 가입 후 2년이 지난 뒤부터 자살도 사망보험금을 지급하게 돼 있습니다. 문제는 보험사들이 이를 재해사망특약에도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점입니다. 자살률이 급증하면서 보험금 지급액도 늘어났습니다. 비슷한 상품을 무분별하게 베껴 내놓는 국내 보험업계의 후진적인 관행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보험사들은 문제를 인식하고 뒤늦게 상품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걸러내야 할 금감원도 늑장 대처로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보험업계는 금융 당국이 관리 감독의 책임을 모면하려고 지나치게 압박하고 있다는 불만을 쏟아냅니다. 하지만 보험사들이 보험을 판 뒤엔 ‘나 몰라라’ 한다는 소비자들의 불만도 큽니다. 보험사들은 “법대로”를 외치기 전에 선진국 보험사처럼 철저하게 법리 검토를 해 상품을 개발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등의 자정 노력부터 보여야 할 것입니다. 금융 당국도 보험 상품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보험업계를 지원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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