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만 좋으면 60세도 지원… 이스라엘 스타트업 산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8일 03시 00분


[청년이 희망이다]창업가 키우는 글로벌 공대

《 테크니온은 1912년 개교한 이스라엘 최고(最古)의 대학으로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독일계 유대인들이 뜻을 모아 이스라엘 건국(1948년) 전에 설립했다. 18개 학부 중 11개가 엔지니어링 부문이며 노벨상 수상자를 3명 배출했다. 미국 코넬대와 합작해 뉴욕에, 중국 광둥(廣東) 성 산터우(汕頭)대와 합작해 산터우에 각각 캠퍼스를 만들고 있다. 학생 수는 1만4000명이다. 》

 
이스라엘 줄기세포 연구 회사를 운영하는 이츠하크 앙겔 대표(63)는 예순을 눈앞에 둔 2012년 11월 스타트업 ‘아셀타’를 창업했다. 30년 넘게 프랑스 파리의 제약회사 등에서 일하며 쌓아온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줄기세포 배양액을 상용화하는 회사를 차린 것이다. 그는 이미 수차례 스타트업을 세웠다가 실패했지만 성공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고 다시 도전했다.

 한국이었다면 은퇴할 나이인 예순 언저리에 스타트업을 창업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명문 공대인 테크니온의 전폭적인 투자 덕택이다. 향후 줄기세포가 미래 주력산업으로 성장할 테니 다양한 배양액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아이디어를 대학이 받아들였다. 대학은 직접 투자하고 해외투자자까지 구해 190만 달러(약 22억2000만 원)를 모아줬다. 대학 내 줄기세포 연구소를 사무실로 내주고 연구팀을 지원했다. 앙겔 대표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대학 연구소장이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았다.


○ 아이디어 좋으면 나이 불문 창업 지원


 
테크니온 학생들이 꾸린 의료용 웨어러블 기기 스타트업 ‘필아이티(FeelIT)’ 팀이 올해 비즈텍 창업경진대회에 참가해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대회 참가자들은 6개월 창업 교육과 연구개발의 성과물을 투자자와 언론에 선보인 후 실제 투자 제안을 받기도 한다.
 테크니온 제공
테크니온 학생들이 꾸린 의료용 웨어러블 기기 스타트업 ‘필아이티(FeelIT)’ 팀이 올해 비즈텍 창업경진대회에 참가해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대회 참가자들은 6개월 창업 교육과 연구개발의 성과물을 투자자와 언론에 선보인 후 실제 투자 제안을 받기도 한다. 테크니온 제공
이스라엘은 ‘창업국가’다. 이스라엘 출신 기업은 미국 나스닥에 80개 넘게 상장돼 있어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보아즈 골라니 테크니온 대외협력 및 인력개발 담당 부총장은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회사가 유럽연합(EU)의 나스닥 상장 회사 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북부 도시 하이파에 있는 테크니온은 창업국가 이스라엘의 ‘엔진’으로 창업혁신 분야에서 세계 10대 대학에 꼽힌다. 대학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서 설립되거나 운영 중인 스타트업의 54%가 이 대학 출신이다. 그만큼 테크니온 졸업장은 창업 보증수표로 통한다.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들 중 3분의 2는 테크니온 졸업생이 임원을 맡고 있다. 테크니온이 창업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적대적인 아랍 국가에 둘러싸인 지리적 여건에다 인구(800만 명)와 천연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창업을 통한 신규 가치 창출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달 초 테크니온 줄기세포 연구소에 있는 회사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앙겔 대표는 “이스라엘은 아이디어만 좋다면 내 나이에도 꾸준히 창업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나라”라고 말했다. 그의 회사는 세계 여러 회사에 줄기세포 배양액을 납품해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기업 가치를 100만 달러(2015년)까지 끌어올렸다.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과 미국 등 대형 투자사에서 1000만 달러를 모금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신체 장기를 재생시키는 기술개발을 목표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는 유명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올해 무릎뼈 재생 수술을 받았을 만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는 “줄기세포를 통한 질병 치료와 비만, 모발이식 등은 현실화 단계에 와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줄기세포로 만든 장기를 3차원(3D) 프린터로 대량 양산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 ‘60시간 창업 마라톤’에 창업 과목 부전공까지


 테크니온은 2005년부터 브로니카창업센터를 설립하고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창업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이 센터 창업교육의 백미는 ‘3일 만에 스타트업 창업하기(3DS)’와 ‘비즈텍 경진대회’다. 3DS는 생면부지의 학생들이 모여 3일 안에 팀을 짜고 아이디어를 정해 투자섭외까지 해보는 프로그램이다. 학내에선 ‘60시간 마라톤’으로 불린다. 창업을 해보고 싶지만 경험이 없어 주저하는 학생들에게 창업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과정이다.

 비즈텍은 매년 4월 사전 신청을 통해 엄선한 30개 팀을 6개월간 집중 교육해 1∼3위를 뽑는 창업 경진대회다. 여름방학 때도 매주 세 번씩 강의를 듣고 멘토들과 회의를 이어가는 고강도 교육으로 유명하다. 매년 10월에는 언론인 벤처투자자 학자 등 300여 명을 초청해 참가 팀의 결과물을 소개하고 실제 사업으로 이어질 기회를 부여한다. 1위 팀에는 상금으로 창업지원금 1만 달러를 주고 경제신문에 기사를 내주기도 한다.

 11년에 걸친 비즈텍 경진대회를 통해 100만 달러 이상 규모의 회사가 60여 개 탄생했다. 2010년 이 대회에서 2위에 오른 팀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온라인 결제서비스 회사 ‘거스토’를 차려 수십억 달러 규모로 성장시켰다. 이 대회 출신 학생이 차린 척추 수술 기계 제조회사 ‘아질렉트’는 5억 달러에 팔리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테크니온의 창업 교육은 학문적 지식과 영감을 창업으로 이어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공대생 위주인 창업지망생이 기술 개발에만 매몰되면 제대로 된 경영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전공 학부 안에 전공과 연계된 창업 과목이 별도로 개설돼 있고, 창업 과목을 부전공으로 택할 수도 있다. 일반 교양수업에서도 창업 강의를 빼놓지 않는다. 라피 나베 브로니카창업센터장(60)은 “창업교육은 운전과 똑같다. 운전을 해보면 이론과 실전이 다르듯이 창업 역시 그 간극을 메워주는 게 교육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하이파=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창업#공대#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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