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최순실 게이트와 리더의 책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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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산업부 차장
허진석 산업부 차장
 “의사가 자기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아는지 아나?”

 “…….”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은 환자(의 안위)를 통해서밖에 없어.”

 인기리에 방영 중인 TV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주인공 김사부가 후배 의사에게 던진 말이다. 후배 의사는 자신이 의사로서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을 품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사태를 보며 대통령을 비롯해 ‘최순실 게이트’에 관련된 사람들은 당시에 자신들의 일을 어떻게 평가하며 수행했을까 궁금했던 터라 극 중 이 대사가 유독 또렷이 들려왔다. ‘의사’는 ‘대통령’으로, ‘환자’는 ‘국민’으로 치환돼 들렸던 것이다.

 드라마적 상상력을 발휘해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을 때 그들의 심경을 상상해 봤다. 대통령이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으로 대기업들의 자금을 모아야 한다고 했을 때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은 일인자의 명령이니 탁월한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마음먹었을까. 아니면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지만 윗사람의 지시이니 그냥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정호성 부속비서관은 강남에 사는 한 아주머니에게 대통령의 말씀 등을 심부름하면서 자신의 일이 공무로서 적합한지 회의(懷疑)한 적이 있을까.

 창조경제와 문화 융성과 관련된 일은 이 정권의 국정 기조여서 조그만 행적도 크게 떠들고 싶어 하는 홍보 사안이다. 그런데 800억 원이라는 돈을 모으는 일을 공개도 하지 않고 비밀리에 진행한 것은 관련 공직자들이 당시에도 합리적으로 의심을 할 만한 부분이다. 역시 대기업들로부터 주로 돈을 모은 청년희망재단의 모금이 공개적으로 이뤄진 것과 비교해도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리더의 지시가 의심이 된다. 최순실에게 직접 돈을 보냈던 삼성의 직원들이라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으로 무엇이 있을까. 매일 업무에 치이고 상사에게 꾸지람도 듣는 상황인데, 범죄인지는 명확하지 않은 것 같은 지시를 무슨 명분으로 거절할 수 있을까.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 법한 이런 상황에서 아랫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은 많지 않다. 그래서 지도자의 책임은 막중한 것이다(아랫사람을 벌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9일 박근혜 대통령은 “부덕과 불찰로 국가적 혼란을 겪게 돼 국민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민심은 물론이고 여당인 새누리당까지 “적폐를 청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불찰’과 ‘적폐’라는 큰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조심해서 잘 살피지 않은 탓으로 생긴 잘못’과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옳지 못한 해로운 경향’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은 많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고, 조직원들이 힘을 모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경쟁의 한가운데에 놓인 한 최고경영자는 자신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이렇게 묻는다고 들려줬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매일 열심히만 하면 더 나아지는 길인가.”

 투명성은 건강하게 발전하는 국가나 조직의 필요조건이다. 조직의 효율성과 조직원의 의욕을 끌어올리는 정공법(正攻法)이기도 하다. 국가나 조직은 투명성을 바탕으로 조직원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가 돼야 자발성의 힘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최순실#박근혜#탄핵#리더#창조경제#문화 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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