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얼라이언스(해운동맹) 가입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경쟁사들이 오히려 영업 전략으로 이용하고 있다.”
12일 서울 종로구 현대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현대상선이 글로벌 해운동맹 ‘2M’에 가입하는 대신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기로 했다고 알려진 뒤 ‘반쪽짜리 가입’이란 비판이 나오자 마련된 자리였다. ‘가입’이든 ‘전략적 협력’이든 차이가 없는데, 외부에서 공연히 논란을 부채질한다는 게 유 사장의 논리였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자초한 것이었다. 현대상선은 7월 “2M과 공동운항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며 가입을 기정사실처럼 설명했다. 일부에서 MOU와 동맹 가입은 별개라는 문제 제기가 있을 때마다 ‘음해집단’의 주장으로 치부하며 펄쩍 뛰었다. 최근 “2M이 현대상선과 동맹 가입 논의를 중단하고 다른 협력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에도 “가입 협상을 막바지 조율 중”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가입’보다 낮은 단계인 ‘전략적 협력’으로 매듭지어지며 현대상선의 해명은 무색해졌다.
KDB산업은행도 이런 해명에 슬며시 숟가락을 얹었다. 정용석 산업은행 부행장은 “(협상의) 외양만 갖고 보는 것은 잘못됐다.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2M은 세계 1, 2위 선사인 머스크, MSC가 포함돼 있는 세계 최대 해운동맹이다. 이들과 공동운항을 하는 것과 그저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현대상선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가지 않는 조건으로 2M 가입을 내세웠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산업은행이었다.
현대상선과 산업은행은 2M과의 협력으로 기존 해운동맹인 ‘G6’에 속해 있을 때보다 여건이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북미 서안행 운영 항로 개수도 늘고 선복(선박의 화물 적재 공간)량도 늘었다는 것이다. 또 비판을 의식한 듯 2021년까지 글로벌 해운사 10위 안에 드는 것을 목표로 한 경영컨설팅 결과도 함께 들고 나왔다. 결론은 선택과 집중을 하고 몸집을 불리기보다는 체력 확보에 주력하겠다는 당위론에 그쳤다.
현대상선과 산업은행이 이제 와서 2M 가입이 어려운 과제였다느니, 전략적 협력만으로도 충분한 실속을 챙겼다느니 하는 것을 납득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 현대상선은 또 MSC와 컨소시엄 형태로 한진해운의 미국 롱비치터미널을 인수하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기자 “우량자산이라고들 하는데 사실 우량자산이 아니다”라고 한발 뺐다. 높은 데 있는 포도송이를 따는 데 실패한 여우가 “저건 신 포도야” 하고 돌아섰던 이솝우화가 생각난다.
결과적으로 현대상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 몫까지 해낼 것이라던 정부의 기대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현대상선이라는 개별 기업의 실패가 아니라 정부 해운정책의 큰 패착으로 보는 게 더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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