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1883∼1950)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강조했다. 슘페터는 저서 ‘경제발전의 이론’에서 기업가에 의해 수행되는 혁신 활동인 창조적 파괴를 통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역설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창조적 파괴를 위한 기술혁신이다.
카드업계도 기술혁신을 위한 장기적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보고서 ‘기술혁신과 금융제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기업들은 장기투자 자금의 90% 이상을 내부 자금으로 조달하고 있다고 한다. 불확실성이 높은 장기투자는 내부 자금이 충분해야 가능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재 카드사의 상황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 수익 기여도가 낮은 체크카드 비중 확대, 타 업권과의 경쟁 심화, 조달비용 상승 등으로 내부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함께 현재 지급결제 시장은 간편결제 서비스, 모바일 결제, 현금 없는 사회, 블록체인 등의 용어와 함께 격변기를 겪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은 지급결제 서비스 분야에서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제약과 업무 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지급결제 서비스에서 국가 간 장벽이 사라지고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금융회사의 경계도 없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경쟁에서 이기면 모든 걸 얻지만 지는 순간 바로 시장에서의 퇴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 요구는 지엽적 측면만 고려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가맹점 수수료는 가맹점이 현금이 아닌 지급 수단으로 카드를 허용하면서 발생하는 편익에 대한 대가로 지급결제 서비스 업체(카드사, 은행, 밴(VAN)사 등)에 지불하는 수수료다. 카드결제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필수 비용인 것이다.
카드 사용으로 인한 사회적 후생도 이런 수수료 덕분에 유지된다. 가맹점은 카드 수납을 통해 매출 확대, 수납 편의성 증대, 신용거래 기회, 세액공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소비자는 결제 편의성, 소득공제, 신용공여라는 혜택을 받는다. 거래 투명성이 확대되면서 지하경제가 축소되고 세수 증대, 통화 주조비용 절감 등 국가적 편익도 크다.
이 같은 사회적 혜택을 고려하지 않은 수수료 인하 조치는 카드사의 R&D 투자 여력을 축소시킬 가능성이 크다. 가맹점 수수료에는 승인 및 결제, 가맹점 모집과 심사, 마케팅 제휴, 가맹점 관리, 단말기 설치 등 고정 비용이 포함돼 있다. 수수료율을 지속적으로 인하하면 카드결제 네트워크의 유지와 투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현재 페이팔, 알리페이, 애플페이 등 제3의 지급결제 서비스와 비자, 유니온페이 등 국제적인 카드 브랜드사들이 국내 진출과 지배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대규모 자본을 바탕으로 빅데이터 분석, 사물인터넷(IoT) 스마트 결제, 비컨 모바일 결제서비스 등 신기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라는 단편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지급결제 서비스 관련 기술 혁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결국 국내 지급결제 서비스의 편익과 사회후생을 증대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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