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에 공식적으로 팔리고 있는 승용차는 국산과 수입을 합쳐 모델이 200여 종류에 이릅니다. 한 대씩 모두 구입해도 200억 원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단 한 대의 가격으로 국내 모든 판매 모델을 두 번 사고도 남는 차가 있습니다.
프랑스 부가티가 1938년에 만든 ‘57SC 애틀랜틱 쿠페’가 주인공입니다. 모두 4대가 제작돼 현재 2대만 남아 있습니다. 이런 클래식카의 시세는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팔릴 때 새롭게 정해집니다.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 옥스나드에 있는 멀린자동차박물관이 파란색 57SC 애틀랜틱 쿠페를 약 4000만 달러(약 477억 원)에 구입하면서 가격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경매를 통한 매매가 아닌 데다 박물관 측이 공식적으로 인수 가격을 발표하지 않아 추정 금액이긴 하지만 당시 월스트리트저널 등 언론은 세계 최고가 자동차로 인정했습니다. 공식적인 최고가 클래식카는 2014년 경매를 통해 팔린 1962년산 페라리 ‘250GTO’로 3811만5000달러(약 455억 원)입니다.
나머지 57SC 애틀랜틱 쿠페 한 대는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랄프 로렌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2013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클래식카 전시회 ‘콘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에 로렌이 직접 광이 번쩍이는 검은색 모델(섀시 넘버 57591)을 몰고 나와 대상을 받았습니다.
이 차가 특별한 것은 부가티 ‘57’ 모델의 고성능 버전이면서 차체 가운데 물고기 지느러미 같은 것이 붙어 있는 독특함 때문입니다. 부가티는 57SC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차체를 마그네슘으로 설계했습니다. 마그네슘은 가볍고 강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용접이 힘들어서 차체를 좌우 두 쪽으로 만든 뒤 맞붙여 리벳으로 고정하기 위해 지느러미 같은 부분을 고안한 것이죠. 하지만 결국 마그네슘 차체는 무산됐고 알루미늄 재질로 바뀌었지만 부가티는 독특한 디자인을 그대로 살려뒀습니다.
이런 시행착오 덕분에 이 차는 세계 최고가 클래식카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성능도 당시로는 슈퍼카급이었습니다. 8기통 3257cc 슈퍼 차저 엔진이 들어가 200마력을 냈고, 최고속도는 시속 190km에 달했습니다. 무게는 알루미늄 차체 덕분에 지금의 경차와 비슷한 950kg에 불과했습니다. 클래식카 전문가들은 이 두 대가 경매에 나온다면 500억 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클래식카의 인기가 급등하고 있습니다. 매년 100종류 이상의 신차가 쏟아지지만 엄격한 안전·환경 규제와 함께 효율성 위주로 자동차산업의 구조가 바뀌어서 과거처럼 실험적인 기술과 낭만적인 디자인의 자동차가 나오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마땅한 투자처를 잃은 자본도 한몫을 합니다.
하지만 자동차가 오래됐다고 무조건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희소 수량은 기본이고 기술적인 시도와 아름다운 디자인까지 겸비해야 명품 클래식카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게다가 탄생 비화나 소유자의 스토리가 더해지면 가치는 치솟게 됩니다.
꼭 50년 이상 된 클래식카가 아니어도 비교적 최근인 1990년대에 생산된 공랭식(엔진의 열을 냉각수가 아니라 공기로 식히는 옛날 방식) 포르셰 ‘911’이나 메르세데스벤츠 특유의 디자인과 기계적인 완성도가 높았던 ‘W124’ 같은 모델들도 가격이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현대자동차 ‘포니’ 같은 역사적인 의미의 올드카 외에 기술과 디자인으로 클래식카의 지위를 획득할 만한 자동차가 보이지 않습니다. 1955년 한국에서 생산된 최초의 자동차였던 ‘시발자동차’는 복원 모델 외에는 원형이 존재하지 않고 포니, ‘기아마스타 600’, ‘K303’, ‘브리사’ 같은 차들도 대부분 보존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압축성장을 거듭하는 산업화 과정 속에서 심미안이 깃든 디자인과 장인정신이 빚어낸 자동차가 탄생하지 못했고, 그나마 소중히 보존하는 노력조차 따르지 못했습니다.
세상살이도 자동차와 크게 다르지 않나 봅니다. 국가가 위기에 빠지다 보니 고견을 들을 만한 원로나 석학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집니다. 우리의 정치 사회적인 문화가 산업과 마찬가지로 숙성되지 못했다는 뜻이겠죠. 자동차가 오래됐다고 가치가 저절로 올라가지 않듯이 원로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어른’이 되기 위한 노력을 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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