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모든 사람 속에 있는 ‘보통 인간’이라는 가공의 생물을 연기하는 거예요. 저 편의점에서 모두 ‘점원’이라는 가공의 생물을 연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편의점 인간(무라타 사야카·살림·2016년)
새해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덕담(德談)을 주고받는다. “내년에는 취직해야지.” “새해엔 좋은 짝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이런 덕담에는 ‘남들처럼’이라는 말이 생략돼 있다. ‘네 나이에는 이래야 마땅하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듣는 사람의 감정이나 바람을 고려하지 않은 덕담이 때로 ‘강요’처럼 느껴질 수 있다. 사회의 올바른 구성원이 되려면 반드시 따라야 할 준수 사항처럼 말이다.
소설 ‘편의점 인간’은 현대사회가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올가미를 씌우는지 보여준다. 주인공 ‘후루쿠라’는 사회가 규정한 ‘보통 인간’에서 벗어난 30대 중반의 여성이다. 그는 18년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하지 못했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이 조금도 불편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가족들은 평범하지 않은 그녀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달라 늘 불안했던 후루쿠라는 편의점 점원이 된 뒤 처음으로 이 사회의 쓸모 있는 부품이 됐다고 느낀다. 편의점에선 모든 일이 매뉴얼에 따라 이뤄진다. 어떻게 해야 남들처럼 살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는 이 완벽한 매뉴얼의 세계에서 비로소 안도한다. 하지만 사회는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연애, 결혼, 취직이라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괴롭힌다.
사회가 규정한 대로 인생의 단계를 밟아 나가야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달라는 말 대신 ‘그 모습 그대로 곁에 있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 어떨까. “올해 네가 있어서 정말 좋았어. 내년에도 함께 있어 주면 좋겠어.” 올 연말에는 이런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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