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휴대전화용 반도체 기업인 퀄컴에 1조 원이 넘는 역대 최고 과징금이 부과됐다. 퀄컴이 보유한 특허의 사용권을 경쟁사에 '차별 없이' 제공하도록 하는 시정명령도 내려졌다. 퀄컴의 '특허권 남용'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린 것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처음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글로벌 통신 칩셋(중앙처리장치)과 라이선스(특허 사용권) 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퀄컴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조300억 원을 부과했다고 28일 밝혔다. 공정위가 퀄컴에 부과된 과징금은 역대 최대 규모다. 지금까지의 최고 과징금은 판매가격 담합으로 6개 액화석유가스(LPG) 업체들이 2010년 4월 부과 받은 6689억 원이다.
퀄컴은 스마트폰 등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이동통신 원천기술(SEP·표준필수특허)을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하겠다는 '프랜드(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확약을 퀄컴이 어기고 특허권을 독점했다고 판단했다.
퀄컴을 시장 독점을 강화하기 위해 다른 칩셋 제조사에는 라이센스 제공을 거절했다. 휴대전화 제조사들에게는 칩셋 공급 중단 위협을 가하면서 자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특허권 계약을 맺었다.
퀄컴의 특허권 남용으로 경쟁 칩셋 제조사들은 시장에서 도태됐다. 2008년 이후 전 세계 주요 11개 칩셋 제조사 중 시장에서 9곳이 사라졌다. 퀄컴의 칩셋에 의존하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연간 12억7300만 달러(약 1조5276억 원)에 달하는 로열티를 지급해야만 했다.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정위의 결정에 대해 "퀄컴이 프랜드 확약을 준수하도록 함으로써 퀄컴 쪽으로 기울어졌던 통신 칩셋 시장의 경쟁 시스템이 복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들도 퀄컴과 대등한 조건에서 특허권 협상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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