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등쌀에 시중은행들이 내년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올해의 절반으로 낮춰 잡았다. 1300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에 놀란 금융 당국이 은행들의 대출 총량을 바짝 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최근 금융감독원에 연간 5% 안팎의 증가 목표치를 제시한 2017년 가계대출 관리 계획을 제출했다. 이는 올해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율 잠정치(10.6%)의 절반에 불과하다.
가계부채가 1300조 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달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이달 들어 은행, 저축은행 등의 최고경영자(CEO)들과 연달아 만나 “불확실성에 대비해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금융당국으로선 금리 상승기에 1300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금융당국이 회초리를 들자 시중은행도 납작 엎드려 목표치를 일제히 낮췄지만 계획대로 리스크 관리가 될지는 미지수다. 시중은행들은 1년 전에도 가계대출 증가율을 5% 안팎으로 유지하겠다고 했다. 은행권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는 등 금융당국의 조치도 뒤따랐다. 그럼에도 결과는 당초 계획의 갑절이 넘는 10.6% 증가로 나타났다. 시중은행들은 올 3분기(7∼9월)에 4년 만에 최고 실적을 올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분양시장의 신규 공급이 예상보다 늘어 집단대출 중심으로 대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 사이 ‘풍선효과’가 나타나 가계부채의 질은 더 악화됐다. 은행권에서 돈줄이 막힌 저신용자들이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문턱이 낮은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권,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소득 감소 등으로 생활비 부족에 시달리는 이들이 은행권의 두 배 이상인 금리를 부담하며 제2금융권으로 이동했다.
이대로라면 1년 전 은행들이 공수표를 남발한 상황이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이나 시중은행이 단순히 대출 목표를 줄이는 것만으로 리스크 관리에 힘썼다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목표 관리와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저소득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실행 계획부터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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