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새해 연중기획]양극화 심화… 꿈을 잃은 나라 돼
“노력하면 계층상승 가능” 31% 그쳐… 공정경쟁으로 좌절 대물림 막아야
“만족스러운 삶을 살려면 부(富)가 많은 것만으로는 안 된다.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사회 참여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201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저서 ‘위대한 탈출’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노력할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고른 기회를 보장해 주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1970∼90년대 고도성장의 신화를 일군 한국은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많은 기회가 주어졌던 ‘꿈꾸는 나라’였다. 하지만 20년 전인 1997년 외환위기의 충격과 미완(未完)의 구조개혁 이후 한국은 꿈을 잃어버린 나라가 됐다. 더 나은 삶으로 향하는 ‘기회의 문’이 좁아지면서 한국 사회가 외환위기의 그림자를 여전히 떨쳐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아일보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12월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기회의 문이 닫히고 있다는 국민적 인식이 확인됐다. ‘열심히 일하면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4.4%가 ‘불가능하다’라고 답했다. ‘가능하다’는 응답은 30.6%에 그쳤다.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현실’이 자식 세대로 대물림될 것이라는 좌절감도 확산되고 있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자식의 계층이 나보다 더 올라갈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1999년 11.1%에서 지난해 50.5%로 4.5배로 늘었다.
만성적 저성장으로 중산층으로 진입할 기회를 잃고, 공정 경쟁의 룰이 흔들리면서 그나마 남은 기회조차 빼앗긴 ‘소외된 다수’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최순실 게이트는 특권을 쥔 비선 실세에 의해 국정마저 농단되는 현실에 대한 국민적 분노로 이어졌다.
정부와 사회 지도층이 앞장서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좁아진 기회의 문을 바로 세우는 데 나서지 않으면 대한민국호가 침몰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김준경 KDI 원장은 “뒤틀리고 왜곡된 기회의 문을 바로잡고 넓히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도모하고 공동체의 번영을 추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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