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 소재 승강기 제조업체인 A사는 올해 신규 채용 계획을 접었다. 수주 감소로 지난해 수출액이 40%가량 줄었기 때문이다. A사 대표는 “젊은 인력을 수혈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기존 인력 유지도 벅찬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대구의 산업용 밸브 제조업체 B사 대표는 요즘 피가 마른다. 자금 사정이 악화된 거래처의 대금 결제가 지연되면서 덩달아 자금줄이 막힌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채권은행은 재무 건전성이 낮다며 만기 연장을 주저하고 있다. B사 대표는 “어디 한 곳 좋은 소식이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국정 난맥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외환위기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19년 만의 최악이라는 의미다. 얼어붙은 경제 심리는 고용절벽과 투자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 행복지수도 수직 낙하 중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2월 전국 제조업체 2400여 곳을 조사해 9일 내놓은 1분기(1∼3월) 기업경기전망지수(BSI)는 68로 나타났다. 기업의 체감경기를 의미하는 BSI는 100 이상이면 다음 분기 경기가 나아질 것으로 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뜻이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다.
이날 발표된 BSI 68은 전 분기보다 18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2분기(65)와 비슷한 수치다.
조사에 응한 기업들은 체감경기가 악화된 요인(복수 응답)으로 대내적으로는 ‘정치 갈등에 따른 사회 혼란’(40.0%)을 가장 많이 꼽았다.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최근의 국정 난맥상이 기업 심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이어 ‘자금 조달 어려움’(39.2%)과 ‘기업 관련 규제’(31.6%)를 들었다. 대외 요인으로는 중국 성장률 둔화(42.4%), 전 세계 보호무역주의 확산(32.3%)이 위축된 심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금융 여건 악화(28.4%)와 환율변동성 확대(24.0%)도 거론됐다.
이런 가운데 제조업 매출 증가율은 2010년 전년 대비 18.5%였지만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3.0%로 급락했다.
조사 대상 기업의 절반(50.6%)은 올해 ‘보수 경영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는 것이다. 취업문이 좁아질 수밖에 없어 청년고용은 한층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 중 신규 채용을 늘리겠다고 답한 곳은 27.7%에 그쳤다. ‘채용 규모를 비슷하게 유지하거나 지난해보다 줄일 계획’이라는 답변이 49.6%였고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는 곳은 전체의 22.7%였다.
기업들의 투자 위축, 고용시장 축소로 ‘소비절벽’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한국은행의 13개 지역본부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경기판단 소비자심리지수(CSI)’는 울산, 인천, 대구·경북이 각각 52로 가장 낮았다. CSI는 기준선인 100 아래로 내려갈수록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가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인천은 지역본부가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09년 4월 이후 역대 최저치다. 제주, 강릉도 각각 60, 61로 해당 지역의 월간 수치로는 가장 낮았다. 극심한 내수 불황에 조선·해운 구조조정, 국내 정치 불안 등이 겹쳤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행복지수’가 5년 만에 최저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6년 경제행복지수 조사’에서 평균 38.4점이 나왔다고 이날 발표했다. 2011년 37.8점 이후 가장 낮았다. 경제행복지수는 경제적 안정, 경제적 평등 등 6가지 요소로 나눠 조사했다. 연령별로는 경제적 부담이 적은 20대의 행복감이 가장 높았고 60대 이상 고령층은 가장 낮았다. 경제적 행복의 가장 큰 장애물은 ‘노후 준비 부족’(34.0%)이었다. 2015년 같은 답변의 응답률(28.8%)보다 크게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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