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禮)라는 말은 이중적으로 쓰인다. 예의 바르고 매너 좋다 할 때는 긍정적 의미지만 한편으로는 겉치레, 과시, 번문욕례(繁文縟禮) 등 부정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예의 형식이 아닌 예의 정신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예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했던 사람이 바로 예학의 실질적 창시자 공자(孔子·기원전 551년∼기원전 479년)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예의 정신이란 무엇일까?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주자(朱子·1130∼1200)는 예를 ‘하늘의 이치가 무늬로 드러난 것(天理之節文)’이라고 했다. 즉 예는 사회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인위적인 합의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몸짓이 반복되고 소통되면서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얘기다. 마치 일정한 체계를 가진 음성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되고 반복되면서 언어가 만들어지듯, 예의 형식도 공통된 몸짓에서 비롯된 것이다. 겉치레만 있고 배려와 양보, 존중과 공경의 정신이 결여된다면 그것은 예를 가장한 가식일 뿐이다.
결국 예는 고마움의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 근원인 조상에 대한 감사,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에 대한 감사, 나의 삶을 도와주는 사물에 대한 감사 등 예에는 ‘고맙습니다’의 정신이 관통하고 있다. 모든 존재와 사건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순간, 내 마음은 편안해지고 따뜻해진다. 삶의 터전인 대자연과 공동체, 그리고 그 안의 모든 존재가 고맙지 않은 것이 없다.
세상의 모든 관계는 감사를 그 정신으로 하는 예로서 맺어져야 한다. 고용주와 고용자의 관계도 예외가 아니다. 이익을 놓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 돕고 상생하는 고마운 관계다. 관계의 설정을 달리 보면 내 눈과 마음이 변화하고 거기에 비친 세상도 달라질 것이다. 이와 더불어 조직 전체가 변화하는 상승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고맙습니다’의 예는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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