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통근의 기회를 잡았다. 그렇게 하면 위생과 절주, 낭만과 아버지다움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다.” ―‘출퇴근의역사’(이언게이틀리·책세상·2016년) 월요일 출근길 경의중앙선 수색행 전철 안은 늘 만원이다. 빈자리는커녕 발 디딜 공간조차 없다. 객차가 출렁거릴 때마다 사람들은 한 몸처럼 이리저리 떠밀린다. 환승객이 많은 왕십리역과 옥수역 근처에 오면 사람들의 눈동자는 분주해지고 몸놀림은 빨라진다. 역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가방을 추스르는 사람을 찾기 위한 눈치싸움도 치열해진다. 이 기회를 놓치면 5호선 환승역인 공덕역까지 꼼짝없이 서서 가야 해서다. 왕십리에서 선정릉역으로 이동해 9호선 급행열차에 타면 승객들 틈에서 ‘공중부양’ 자세로 몇 정거장을 가야 할 각오도 해야만 한다. 지옥 같은 월요일 출근 전쟁을 치르고 사무실에 들어서면 피로가 밀려온다. ‘활기차게 한 주를 보내자’던 다짐도 사그라진다. 집으로 돌아갈 퇴근길도 막막하다. 회사와 집이 먼 직장인들의 일상이다.
이런 출퇴근길을 “매혹적이고 흥분되며 만족스러운 여정”이라고 한다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19세기 영국 런던에 일터를 둔 이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언 게이틀리는 ‘출퇴근의 역사’에서 산업혁명 시기 통근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이었다고 소개한다. 당시 런던은 오물이 가득하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비위생적인 공간이었다. 이때 철도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해 도시민이 교외로 탈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불행히도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에게 통근은 더 이상 낭만적인 여정이 아니다. 치솟는 집값에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 서민들의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행로일 뿐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통근시간이 가장 길다. 그럼에도 게이틀리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사소한 여러 가지 짜증과 빈번한 불편에도 불구하고 통근은 우리 삶의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통근이 돈을 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먼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한다는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보는 건 어떨까. 첫 출근을 하던 그날의 마음가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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