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뉴욕의 날씨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비유로 시작된 말인데,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의미로 쓰인다. 어떤 정책이 만들어질 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나타날 수가 있다. 작은 변화가 도미노처럼 이어지며 누군가에겐 큰 위기를, 또 누군가에겐 기회가 되기도 한다.
국내 폐지 재활용업체가 추산하는 폐지 줍는 노인의 숫자가 150만 명이란다. 솔직히 믿기지 않는 수치였다. 통계청의 2015년 인구총조사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이 362만 명 정도니까 2.4명 당 1명꼴로 폐지를 줍는다는 얘기다. 설마 이렇게 많을까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48.6%로 독보적 1위인 점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할 듯도 싶다. 사실 믿고 싶지 않은 너무 가슴 아픈 숫자다.
그런데 올 들어 정책이 바뀌며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빈병 회수율과 자원 재활용률을 높이는 목적으로 정부가 소주병은 40원에서 100원으로, 맥주병은 50원에서 130원으로 빈병 값을 올린 것이다.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빈병은 꽤 큰 소득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빈병 값이 대폭 오르자 주택가에서도 빈병이 사라지고, 음식점이나 술집들도 빈병을 내놓지 않는다. 돈이 쏠쏠하다 보니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까지 빈병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폐지값은 더 떨어지기까지 했다. 빈곤 노인들에겐 심각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빈병 회수율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평균 회수율이 95.9%에 달했다고 한다. 빈병값을 올리지 않았어도 회수율은 높았다. 그 일등공신이 아마 폐지 줍는 노인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빈병뿐 아니라 폐지 재활용 면에서도 그들이 미친 영향은 꽤 크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잘 수거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빈병값 인상 정책을 만든 이들은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좀 더 돈을 벌면 좋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돈은 돈대로 쓰고, 폐지 줍는 노인들의 밥그릇까지 깨버렸다. 분명 의도치 않았던 결과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또 다른 나비효과를 보자. 시중에 유통되는 담뱃갑 포장지에는 목에 구멍이 뚫린 후두암 환자, 피부 노화가 진행되는 얼굴 등 10종의 경고그림이 표시된다. 혐오성 경고그림인 셈인데, 담배를 덜 피우게 하려는 의도로 지난해 국민건강증진법을 개정한 덕분이다. 그런데 이 때문에 의도치 않게 반사이익을 거두는 이들이 생겼다. 바로 담배 케이스 판매업자들이다.
이제 담배 케이스가 불티나게 팔린다. 플라스틱 케이스부터 각종 메탈 재질까지 다양한데, 수천 원에서 수십만 원에 이르기까지 가격대도 다양하다. 해외에서 수입된 고가 담배 케이스의 경우 60만 원대까지 한다. 흡연자들 사이에서는 멋진 담배 케이스에 담배를 넣고 다니는 게 유행이 될 듯하다. 뛰는 정책 위에 나는 흡연자의 대응인 셈이다. 아울러 정책이 소비 트렌드에 미친 영향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정부는 앞서 담뱃값을 대폭 인상하는 금연정책을 펼쳤지만 담뱃세만 대폭 증가시키고 결과적으로 흡연율을 낮추진 못했다. 담뱃값이 비싸지니까 직접 만들어 피우겠다는 이들이 생겨나서 담배종이와 연초, 담배를 말아주는 기계 등이 팔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상황에 따라 놀라운 적응력을 보인다. 담뱃값이 올라도 금방 적응했고, 이번에 담뱃갑 혐오성 경고그림에도 곧바로 적응할 기세다. 흡연율 하락 대신 담배 케이스를 파는 이들만 특수를 누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빈병값을 올리면 빈곤한 노인들이 타격을 입는다는 것과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넣으면 담배 케이스 판매량이 급증한다거나 하는 것은 해당 정책을 고민했던 이들의 머릿속엔 없었던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트렌드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겐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만큼 세상은 서로 얽히고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요즘 어느 대기업 오너의 구속영장 발부가 되는지 안 되는지 관심을 기울인 이가 많다. 영장은 기각되었지만, 사람들의 공분은 더 거세졌다. 이런 공분은 여러 재벌기업 오너들에게도 확산된다. 어쩌면 이런 공분이 일종의 나비효과가 될 수도 있다. 하나하나의 변화가 서로 연결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다양한 변화를 거침없이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혀 예상 못했던 상황이 몇 달 후 발생할지는 누구도 모르는 법이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며, 저서로는 <라이프트렌드 2016: 그들의 은밀한 취향> <라이프 트렌드 2015: 가면을 쓴 사람들> <라이프 트렌드 2014: 그녀의 작은 사치> <완벽한 싱글> <라이프 트렌드 2013: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 <트렌드 히치하이킹> 등이 있다.
댓글 0